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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사는 얘기보다 더 재미있는 패션과 패션피플들의 진짜 이야기 - 미디어 패션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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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코너는 책속의 패션이나 폐션계 비하인드 스토리, 패션기업의 흥망성쇄 등 잘 알려지지 않은 패션과 관련된 잡다한 내용들을 전하는 코너입니다. 특히 이번처럼 펑크난 코너를 때울 때 쓰일 예정입니다. > > 동대문시장의 출발은 배오개시장 > <서울의 동쪽> > > 서울에 살면서, 혹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서울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역사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조선 건국 초 새로운 도읍지로 놓고 정도전과 무학대사가 경쟁을 벌였다는 정도는 알 것이다. > > 정도전의 의견이 반영돼 결국 한성은 제왕남면(帝王南面), 좌묘우사(左廟右社), 전조후시(前朝後市) 등 유교의 원칙에 따라 수도의 시설들이 배치됐다. 이렇게 들어선 서울의 특징은 한반도의 지형인 동고서저가 아니라 서고동저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서울만은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아 전반적으로 태극문양을 만들어서 풍수지리에서 명당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 또 서울은 4개의 내산과 4개의 외산으로 구성됐는데 內山은 동쪽의 낙산, 서쪽의 인왕산, 남쪽의 목멱산(남산), 북쪽의 백악(북악산)이고 外山은 북쪽에 북한산, 동쪽에 아차산, 서쪽에 덕양산, 남쪽은 한강 이남의 관악산이다. 여기서 4개의 내산을 연결하는 도성이 한양이었고 도성에서의 10리길, 현재의 서울은 한성부에서 관할했다고 한다. 또 동대문 밖은 동교, 서대문 밖은 서교라고 불렸는데 교외라는 말은 이 교의 바깥쪽이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 > 책에는 제목처럼 서울의 동쪽, 즉 동대문(흥인지문)을 중심으로 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데 이 중 패션의 메카 동대문 시장의 유래를 비롯한 과거와 현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 동대문시장의 유래를 살펴보면 동대문 주변에는 조선초부터 군인들이 많이 살았다. 어영청, 동별영, 장용영, 훈련원, 하도감 등 다양한 군사시설들이 서울의 동쪽에 위치했기 때문. 이들 군인은 조선후기 균역법 시행이후로 상업에 관여하는 일이 많았는데 이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배우개장이 발전했다. (배우개(배오개)는 큰 배나무가 있었다는 설과 사람 잡아먹는 호랑이가 자주 나타나 백 명이 모여서 지나가야 하는 고개라는 의미해서 배우개가 됐다는 설이 있다.) 여기 나오는 배우개장이 지금의 광장시장의 전신인데 전차가 생기고 동대문 근처에 발전소와 영화관 등이 생겨나면서 시장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고 한다. > 어쨌든 지금도 남아있는 광장시장은 광교에서 장교까지 개천을 덮어 그 위에 시장을 만들었다고 해서 광장시장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또 동대문 근처에 있는 시장이라고 하여 동대문시장이라고도 불렸는데 한국전쟁 이후 고유명사인 ‘동대문시장’과 평화시장이 생겨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발전했다. > 동대문시장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자리잡은 것은 한국전쟁 이후다. 전쟁 이후 가난한 사람들이 현재 대학로 근처에 있는 낙산에서 동대문지역에 걸쳐 흙집, 즉 토막을 짓고 살았다. 여기에 살던 사람들이 청계천가에서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군복을 염색해 팔기 시작하면서 시장이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된다. 이후 상인들이 돈을 모아 재봉틀을 사고 옷을 수선해 팔고 담요를 뜯어 외투나 바지를 만들어 팔면서 개천가에는 판자로 만든 점포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곳 상인들이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는데 전쟁으로 고생한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이름을 평화시장으로 지었다고 한다. > > 책에는 이밖에도 전태일과 동대문운동장, 동대문, 낙산 등 서울의 동쪽과 관련된 다양한 내용들이 실려 있다. > > [이 게시물은 패션쇼님에 의해 2019-04-20 16:07:13 멤버십에서 이동 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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