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기억으로는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나 이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낮춰 부를 때 꼰대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요즘에는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지 포털에 물었다. 포털에서는 ‘꼰대는 본래 아버지나 교사 등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켜 학생이나 청소년들이 쓰던 은어였으나 근래에는 자기의 구태의연한 사고 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이른바 꼰대질을 하는 직장 상사나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변형된 속어다’라고 정의한다.
요약하면 예전에는 아버지나 교사를 카르켰던 말이 이제는 말이 통하지 않는 나이 많은 사람을 칭하는 말로 확장된 것이다. 여기에서 포인트는 나이가 아니라 ‘말이 통하지 않는’에 맞춰야 할 듯하다.
사실 주변에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은 많다. 그게 부모일수도 있고 배우자일수도 있고 자식들일 수도 있다. 커뮤니케이션이 많은 사람들일수록 소통에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사회생활이 한창인 나이에는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보다 직장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소통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 소통의 부재가 요즘 시대만의 문제였을까? 과거에 이런 소통의 문제가 더 많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때는 상사를 꼰대로 몰아붙이지 않았는데 요즘 상사들은 후배들과 소통이 더욱 어려워 꼰대 취급을 받는 것일까? 의문을 가져본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옛날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상사는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 때는 이런 일을 공적인 자리에서 보다는 사적인 자리에서 풀곤 했던 것 같다. 거의 매일 반복되는 회식과 술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인간적인 유대감을 쌓고 그렇다 보면 상사의 속마음과 후배의 속마음도 오가고 그런 이야기가 오가다보면 업무에서의 소통도 조금 더 부드러워졌던 것 같다. 물론 그렇지 않고 서로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런 수보다 참고 일하는 사례가 더 많았다.
요즘에는 이런 생각 자체를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왜 상사의 생각을 이해해야 하는지? 그 사람의 개인적인 생각까지 알아야 하는지? 그걸 알기 위해 술자리를 갖는 것도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니 오로지 업무의, 업무에 의한, 업무를 위한 이야기만 소통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니 오해와 변명이 난무하고, 이런 미스 커뮤니케이션의 결과로 상사는 꼰대가 돼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현실.
그런데 과연 이 꼰대라는 멍에를 상사에게만 적용해야 하나? 난 불통의 원인이 꼭 윗사람에게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같은 비율로 아랫사람도 불통의 원인을 제공하는데 그 불통의 시초를 나이 많은 사람이 떠안는 건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사진은 광고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