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내가 써야 할 이야기는 스타들에 대한 것이다. 내가 만났던 스타들도 있고, 나와 동거동락했던 사람도 있으며 내가 동경했던 별에 대한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써야 할 글과 앞으로 등장할 인물들을 정리하며 이 긴 이야기의 제목을 곰곰이 생각했다. 여러 가지 생각들 중에 몇 가지를 추렸는데, 첫 번째는 ‘내 마음 별 과같이’, 두 번째는 ‘별은 내 가슴에’, 세 번째는 ‘별은 내 운명’, 네 번째는 ‘별을 쏘다’였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드라마, 혹은 노래 제목이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여러 지인들의 의견을 반영해 ‘별을 쏘다’로 결정했다. ‘별을 쏘다’는 나와 인연이 있는 조인성이 전도연과 함께 출연해서 히트한 드라마 제목이다. ‘너는 내 운명’도 나와 중앙대 동기인 박진표 감독의 작품이기는 하나, 어쨌든 ‘별을 쏘다’로 정하고 집으로 향하는데 불현 듯 ‘별을 수놓는 남자’라는 제목이 떠올랐다. 내가 제작했던 O.P.P.A의 두 번째 앨범의 수록 곡이기도 한 이 제목이 결국 나를 대표하는 이 글의 제목이 됐다.
가수의 꿈을 접고 생활인으로 살아온 지난 30여년을 돌아보면 이화여대 앞과 대학로, 구로, 방배동에서 약 35개 패션 브랜드 대리점을 운영하면서 연예인을 키우는 매니지먼트 일을 하며 살았다. 정리하면 스타(별)를 육성하고 패션(수를 놓다) 관련 일을 하며 살아온 것이다. ‘별을 수놓는 남자’는 그래서 더욱 가슴에 와 닿는 제목일 수밖에...
우리나라에서 나와 같이 패션과 스타 육성이라는 두 가지 다른 일을 동시에 했던 사람이 한명 더 있다. 이정재와 주진모 등을 발굴하는 등 매니지먼트 업계에서 스타제조기로 불렸던 디자이너 고 하용수 선생이다. 물론 하용수 선생님과 나를 동급으로 비교하는 게 억지에 가까울 수 있다. 그분의 스타에 대한 안목과 패션을 사랑하는 마음을 따라갈 수 없음도 인정한다.
다만 스타를 꿈꾸었고 그 꿈이 꺾인 후에도 꿈을 이어가기 위한 나의 노력에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다. 나는 전주대학교 통계학과를 다니다, 가수의 꿈을 이루기 우해 1985년 중앙대 연극 영화과에 다시 입학했다. 당시 동기가 전인화, 김희애, 조용원, 박중훈, 변우민 등이었고 뮤지컬 연출가 이지나, 영화 감독 박진표, 최호, 박광춘, 이항배, 영화 ‘관상’을 제작한 주피터필름 주필호도 입학 동기다. 또 함께 학교를 다녔던 선후배로는 정보석, 손현주, 배종옥, 허윤정, 신애라, 임호, 가수 최혜영, 원미연, 이재영 등이 있다.
20대 초반, 우리들은 함께 꿈을 키웠고 또 열심히 배웠다. 지금 성공한 동문들을 보면 그때부터 남 달랐던 기억이 또렷하다. 전인화, 김희애, 조용원, 박중훈 등 누가 봐도 예쁘고 잘생긴 스타들이 잘 된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에도 에티튜드가 남달랐던 사람이 결국에는 성공한다는 경험도 뚜렷이 남아 있다.
그 중에서도 현재 총 동문회장인 2년 선배, 배우 손현주의 에티튜드는 압권이었다. 그는 나와 여러 작품을 함께했지만 솔직히 탑스타급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낮은 자세와 태도로 극복했다. 올라갈수록 더 낮아지는 겸손한 인간적인 모습이 오늘의 손현주를 있게 한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이후에도 스타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이런 에티튜드를 강조해왔다. 시도 때도 없이 말하다보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이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1997년 갓 데뷔한 O.P.P.A를 데리고 간 방송국 대기실에서 90도로 인사하는 다른 가수가 있었다. 당대 최고의 인기 아이돌그룹 H.O.T였다.
(사진은 1986년 중앙대학교 연극 제18공화국 중. 사진에는 필자와 변우민, 손현주 등이 있다)
글쓴이 국기형은 전주에서 태어나 가수의 꿈을 키우다 우연히 패션세계에 입문했고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베토벤뮤직을 세워 여러 명의 스타를 배출했다. 아이돌그룹 O.P.P.A를 데뷔시켰고 조인성과 송원근, 유건, 이창희, 김범, 이민혁 등이 거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