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환 에세이) ABC-MART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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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환 에세이) ABC-MART와의 만남

신발장수 1 2019.07.08

  

신발해서 우째 살라고 8- ABC-MART 미키 사장을 만나다

 

1990년 사상천변에 버들강아지가 흐드러지게 피었던 이른 봄날, 생산 진행 상황을 파악하러 H공장을 방문했다. 생산라인에는 ‘Cosby’라는 브랜드의 심플한 여성용 캔버스화가 흐르고 있었다. 디자인이 깔끔해서 어디로 나가는 거냐고 물었더니 일본 오더라고 했다. 호기심이 발동해서 회사 이름과 주소를 받아서 도쿄지사에 이 회사를 찾아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도쿄지사의 Y과장이 몇 달 동안 회신이 없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업무가 바쁘기도 했고 회사 이름이 International Trading Corporation(국제 무역 상사)라 일반 회사 이름 같지 않아서 조금 알아보고는 서랍에 묵혀버린 것이었다.

 

 

주소를 가지고 도쿄 출장길에 찾아가 보았다. 닛포리 역전에서 약 300미터 정도의 이면도로에 회사가 있었다. 2000년도에 회사명을 바꾸어서 지금은 ABC-MART, 당시는 ITC(International Tracing Corp.)였다. 무턱대고 찾아간 회사, 조사를 해보니 기대했던 대로 신발을 수입해서 도매로 판매하는 ‘Importer&Whoesaler’였다. 다만 인상 깊었던 것은 여느 수입상들과는 달리 ABC-MART라는 몇 개의 직영매장도 운영하고 있었고, 또한 보유하고 있던 브랜드들은 나름 Portfolio를 잘 구성해서 경쟁력이 있었다. 스트리트 패션 의류를 중심으로 한 ‘Cosby’와 아웃도어 브랜드인 ‘Hawkins’, 그리고 ‘Vans’의 일본 판권을 가지고 있었다.

 

ABC-MART의 본점(1호 매장)이 있던 우에노 시장을 방문했다. 한국으로 치면 남대문시장 정도의 느낌일까? 우에노 시장은 고가의 시계, 카메라부터 생선, 어묵, 쌀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상품이 뒤섞여 팔리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한마디로 도깨비시장과 전통시장이 무질서하게 얽혔지만 묘한 질서가 공존하는 재미있는 곳이었다.

 

그 한가운데 모퉁이에 ABC-MART 본점이 자리하고 있었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10평이나 되려나? 천여 가지 신발이 매장 밖 고객을 향해 빽빽이 진열되어 있었고 좁은 매장 안은 계산을 하려는 손님들이 길게 행렬을 지어 있었다. ‘Nike’, ‘Adidas’, ‘Puma’ 등 유명한 스포츠 브랜드, ‘Timberland’, ‘닥터마틴같은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혼재되어 있었고 ‘Vans’, ‘Cosby’, ‘Hawkins’도 상당한 종류가 진열되어 있었다.

 

브랜드 단독 매장이 중심인 한국과 달리 일본은 유통에 브랜드가 입점한 형태라 이미지보다는 실질적인 매출을 위해 상품 진열이 중시되는 면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우에노 ABC-MART 본점은 압권이었다. 고객의 관점에서는 저렴한 가격, 다양한 선택, 빠른 상품 회전 등이 보일 것 같았다.

 

회사에 대한 기본 조사를 하고 ABC-MART 매장도 방문하여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정식으로 미팅을 요청하였다. 1990년 당시 ABC-MART는 매출 약 300억원 정도의 소규모 수입도매상이었다. 닛포리 이면의 조그마한 본사 건물에서 처음 미키 사장을 만났다.

 

당시 35살이었던 미키 사장은 첫눈에도 훤칠한 키에 준수한 미남이었고, 여느 일본인과는 다르게 직설적으로 본인의 생각을 표현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나에게는 편한 것이었다. 미키 사장은 이미 수년 전 SK 도쿄지사와 거래가 있었으나 신뢰 문제로 중단되었고 결과적으로 SK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은 상태였다. 또한 현재 한국에 수입관리를 해주는 M이라는 에이전트가 있어서 특별히 나하고 거래할 필요가 없다고 초면부터 단호히 얘기했다.

 

미키 사장은 SK에 일본 신발 팀이 있다는 것, 어떻게 사업을 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고 나는 첫 대면에 꼭 오더를 받아야 한다는 강박도 없었기에 내가 하고 있는 업무에 대한 소개를 한 후 현재의 세계적인 트렌드에 대한 정보, 그리고 일본 시장 전반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었다.

 

이야기가 계속되면서 나는 미키 사장이 바라보는 일본 시장에 대한 인식과 평가에 금세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봐온 대부분의 수입상들은 그저 기존 거래처와의 관계 유지가 가장 중요한 업무였고 새로운 시도나 투자보다는 안전한 상품만을 추구하다 보니 모방과 흉내 내기에만 급급했다. ‘NICE’, ‘FREEBOK’, ‘ADADIS’ 등 웃음 터지는 Copy Brand로 오리지널과 유사하고 싸게만 만들어 주기를 바라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도쿄에서 만난 30대 중반의 젊은 사장은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고민에 집중하고 있었다. 또한 전통적인 일본의 상거래 관행에 대한 불만도 많았고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미키 사장이 보는 나는 어떠했을까? 아마도 무척 재미있고 흥미로운 상대였을 듯싶다. 서른이 채 안 된 어린 친구가 그리 궁색하게 거래를 원하지도 않으면서 최신 트렌드에 대한 정보와 시장의 변화를 자신 있게 설파하였으니, 거기다 ‘Cosby’‘Hawkins’의 상품에 대해서도 은근히 디스(?)를 하기도 했고 ‘Vans’에 대해서는 왜 비싸기만 한 Made in USAValcanized Skateboard 화 만 고집하는지?” 한국에서 Cementing 공법으로 만들면 훨씬 더 다양하고 저렴한 상품라인을 구성할 수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첫 만남 이후 자연스레 교류가 빈번해졌다. 출장 때마다 미키 사장과 만나 2, 3시간씩 사업 얘기를 하게 되었다. 미키 사장이 한국에 오게 되면 따로 만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이 신발을 만들 수 있겠느냐?”라고 물어보며 샘플 1족을 꺼내 보여주는데 한눈에 보아도 까다로운 제품이었다. 목이 높은 농구화였는데 재질은 Split Leather였다. 문제는 컬러였다. White, Black, Blue, Red. BlackBlue, Red는 대표적으로 이염(색이 번지거나 배어듦)이 심한 색깔이고 재질이 Split Leather라 이염의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염료 중 Blue, Red 계열이 이염에 가장 취약한 것이었다.

 

첫 오더 7800. 염색 단계부터 철저하게 준비해서 예상되는 문제를 관리하였다. 최종적으로 마지막 공정에서는 나와 K씨가 한족 한족 직접 전수검사를 해서 포장할 수 있도록 했고 선적 후 단 한 건의 품질 문제도 없었다.

 

이렇게 첫 오더를 무사히 진행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거래가 시작되었다. 나에게는 가장 큰 거래처가 되는데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고 ABC-MART도 일본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심혈을 기울여 기획한 제품들이 연이어 각 수백만 족씩이 판매되는 신기록을 세우게 된 것이었다.

 

1990년부터 올해까지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간의 우여곡절, 환희와 기쁨, 성취로 들떠했던 초기의 순간들과 배신과 증오의 기억들이 점철된 후반의 기록들을 계속 이어가겠지만 초기의 기록을 전하다 보니 인간의 역사는 결국 사람과의 관계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기록을 정리하면서 오래된 사실들을 살펴보기 위해 이리저리 자료들을 찾다 보니 5년 전 법정에서 했던 피고인 최후 진술서를 찾아보게 되었다. 인간관계의 마지막이 고스란히 담긴 것 같아서 씁쓸하기만 하다.

 

이것은 이 기록의 마지막 순간을 위해 남겨 놓을까 고민을 하다가 ABC-MART와의 지난 10년간의 지난한 싸움을 예고하는 복선으로 공개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최후 진술서는 아래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1962년 부산에서 출생한 안영환 대표이사는 30년 넘게 신발업계에 몸담은 신발전문 경영인이다. 1988선경(SK네트웍스) 신발사업부에 입사, 평사원을 거쳐 2002년 국내 신발멀티숍의 새 지평을 열었던 에이비씨마트코리아를 창업했다. 20113월까지 에이비씨마트코리아 대표이사를 지내고 2016년부터 현재까지 슈마커그룹(SMK T&I, JD스포츠코리아)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에 있다. (안영환 대표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younghwan.ahn.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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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문종석 2019.07.23 09:05
대단 하십니다 안대표님
앞으로도 승승장구 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