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환의 신발해서 우째 살라고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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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환의 신발해서 우째 살라고 6

신발장수 0 2019.07.01


현장 관리의 달인, K.. 그러나

 

물량이 많아지고 실적이 올라가다 보니 1년도 되지 않아서 일본 신발 팀이 만들어졌는데, K팀장을 책임자로 하여 특수화 수출일반 운동화, 스니커즈 수출두 파트로 나뉜 조직이었다. 신생조직이다 보니 입사 1년 만에 일반화 수출 파트를 맡을 수 있게 되었고 팀원은 일본어를 전공한 남자 신입 직원과 무역서류를 담당했던 여직원, 그리고 품질관리 검사원이었다.

 

종합상사의 수출 영업담당은 너무 바빴다. 정기적으로 새로운 샘플들을 만들어 거래처들에 보낸 뒤 센다이, 도쿄, 나고야, 오사카, 후쿠오카 등 일본열도를 종단하며 방문상담을 하였다. 게다가 직접 한국으로 출장 오는 바이어를 공항 픽업부터 귀국 때까지 모시면서(?) 오더를 받아내는 영업은 기본이었다. 그렇게 오더를 수주한 후엔 최종 선적 때까지 모든 과정을 챙겨서 완벽히 진행되도록 책임져야 했다. 그 와중에도 새로운 디자인의 샘플을 기획하는 디자이너 기능도 필요했고 아무리 소량의 주문이라도 꼼꼼하게 공장 발주서를 만들어 전달하고 숙지시키는 일을 해야 했다.

 

 

1년 늦게 입사한 N씨가 나와 같은 아파트에 신혼집을 차려서 그 부인과 아내가 좀 친하게 지냈는데, 그 부인 왈 남편이 회사에서 안 선배 얼굴을 제대로 못 본다더라. 머리만 보인다. 늘 책상에서 무언가 쓰고 그리고 있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그 당시 사회상이기도 한데 일주일은 월화수목금금금이런 식이었다.

 

아무도 없는 일요일, 사무실에 출근해서 나는 밀린 샘플 리퀘스트, 오더 발주서, 생산 확인 지시서 같은 서류를 만들고 신혼 초의 아내는 옆자리에서 책을 읽으며 기다려주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게 일이 끝나면 석양이 물들어가는 광안리 백사장에서 저녁을 보냈었다. 항상 차 트렁크에 파라솔과 은박 매트를 싣고 다녔었고 그렇게 큰애가 돌이 될 즈음까지 나름의 워라벨을 즐겼던 것 같은데 모래사장에 풀어놨던 아이가 백사장 모래를 집어먹으려고 해서 기겁한 뒤 그 여유로운 휴일 저녁도 없어졌다. 업무량이 많다 보니 업무능력도 자신도 모르게 많이 향상되었다.

 

K씨는 전라도 담양이 고향이었다. 집안 형편으로 어려서부터 대전지역의 가죽 신발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눈썰미도 좋고 손도 잘 써서 가죽 신발을 혼자서 다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꼼꼼하고 과묵한 성격이었다. 신발 본부에서 가죽 신발을 전문적으로 개발하려고 K씨를 스카우트하였고 신발 본부가 운영하던 자체 개발실에서 근무를 하게 했는데 계획보다 사업이 지지부진하여 할 수 없이 사업을 정리하게 되었다.

 

평소 K씨의 솜씨를 눈여겨본 터라 나의 현장 품질관리 검사원으로 발탁하였다. 풍부한 공장 경험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지만 K씨에게는 큰 장애가 있었다. 그가 가정 형편상 초등학교를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학력이다 보니 모두 영어로 되어있던 수출 관련 용어를 전혀 모른다는 것과 혼자 신발을 설계하고 만들던 업무방식으로만 일을 해왔기에 설계, 견본 제작, 자재 발주 및 입고, 재단, 재봉, 프레스, 접착 제조, 포장, 선적 등 제반 공정 별로 연결된 업무방식을 관리할 수 있는 경험이 없었다.

 

출근시간은 9시인데 K씨와 나는 8시가 되기 전 쇼룸에 마주 앉아 매일의 해야 할 업무를 같이 정리하였다. A4용지 3, 4장을 좌우로 반 접어서 왼쪽에는 K씨가 시간 별로 진행해야 할 업무내용을 쭉 나열하여 적고 오른쪽은 여백으로 남겨 K씨가 공장에서 확인한 내용들을 적을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면 10시에 A 공장 도착하면 이토추상사(Itochu Corporation)의 러닝화 오더용 자재 중 210데니어 원단 500야드가 어제 입고된다고 했으니 자재 창고 들러 컬러 확인하고 물성 테스트 결과표와 Swatch Book을 받아 보관하고 원단 상태에 문제가 없으면 합포 작업할 공장 확인하고 협조 전화를 할 것. 관련 오더용 아웃솔의 시제품이 오전에 나온다 했으니 확인해서 물성 테스트 의뢰할 것. 그 외 나머지 자재 입고 일자 확인하고 재단, 재봉, 제조 일정을 다시 한번 점검해서 OO 일까지 완료되도록 계획 부서와 점검. 그 후 점심 후 B 공장 도착해서 포장재의 컬러 표시가 WHITE/BLACK 인지 확인 등등

 

오전부터 시간대별로 해야 할 업무내용을 하나하나 정리해서 숙지시키는 시간을 가졌다. K씨도 절박함으로 무장되었고 영어로 된 각 무역용어와 표기 등을 빠르게 익혀갔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각 공정을 종합적으로 관리해나갔다. 아침마다 자료를 준비하고 같이 현장관리를 위한 내용들을 정리해주기 위해 K씨 보다 먼저 현장의 상황들을 파악해야 했기에 나도 사무실에서의 실무에 더해 현장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단기간에 엄청나게 늘게 되었다.

 

이러한 현장에 대한 이해와 기술적인 전문성도 더해져 각 바이어들의 신뢰를 얻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초기 코베 중심의 영세한 수입상이 주류였던 거래처의 구성이 점점 규모를 갖춘 유명 브랜드나 대형 유통회사로 변화하게 하였다. YAMAHA, FILA, REGAL, 미쓰비시, 이토추, 그리고 유니클로, ABC-MART 등이 새로운 거래처가 되었다.



1962년 부산에서 출생한 안영환 대표이사는 30년 넘게 신발업계에 몸담은 신발전문 경영인이다. 1988선경(SK네트웍스) 신발사업부에 입사, 평사원을 거쳐 2002년 국내 신발멀티숍의 새 지평을 열었던 에이비씨마트코리아를 창업했다. 20113월까지 에이비씨마트코리아 대표이사를 지내고 2016년부터 현재까지 슈마커그룹(SMK T&I, JD스포츠코리아)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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