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와요 부산항에~”
수습기간이 끝나고, 어느 시장을 담당할 것인지 결정을 해야 했다. 이미 안정적인 미국이나 유럽시장은 그리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신흥시장 개척을 선택하였고 일본 시장 개발을 자원하였다. 일본은 한국보다 먼저 신발 수출국이었는데 인건비 등 비용의 상승과 환율 등의 영향으로 빠르게 주요 신발 수입국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SK는 일본현지지사(당시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에 지사가 있었다)들을 통해 한국에서 신발을 수입하고자 하는 거래처에 수입대금을 빌려주거나 수입 대행을 통해 수출 영업을 확대했다. 일본지사들을 통해 많은 거래처를 소개받았는데 대부분은 내수용의 소규모 신발공장들을 운영하다가 수입상으로 업종을 전환한 경우였다. 일본지사로부터 수입 자금을 지원받고 또한 미국이나 유럽의 트렌드에 대한 정보와 전문적인 공장관리를 제공하는 신발 사업부가 있는 SK에 거래를 하겠다는 수입상이 점점 늘어났다.
거래처가 20여 군데로 늘어났고 눈코 뜰 새 없다는 표현을 실감하는 하루하루였다. 가까운 나라이고 또 동양적인 상거래 관행이다 보니 주문을 할 때면 꼭 한국을 들려 공손(?)하게 직접 주문서를 전달하고 이것저것 깨알처럼 정보를 적고 현장도 확인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거래처들을 상대하면서 넉넉지 않았던 접대비는 일찌감치 한도를 넘어 사비를 털어 대접할 수밖에 없었던 적도 비일비재할 정도였다.
그때 먹었던 야끼니꾸(불고기)와 불렀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셀 수 있을까…
덕분에 노래도, 주량도 늘었다
처음 일본지역을 담당하겠다고 호기롭게 신청했지만 아는 일본어라고는 ‘오하이오(おはよう)’ 정도였다. 연수 때 2달 정도 배운 기초 일본어가 전부였다. 일본 바이어들과 일본어로 대화가 되지 않은 건 당연했지만 간단한 일본어, 영어, 그리고 한자로 적는 필담으로 용감(?)하고, 또 뻔뻔하게 대화를 하였다.
그런데 절실함으로 알아듣고자 하는 단어나 표현은 한번 들으면 바로 내 것이 되었다. 필담이 점점 필요 없어지게 되었고 1년도 안되어 업무적으로 필요한 일본어 상담은 몇 시간을 해도 괜찮을 수준이 되었다. 심지어 지역별 사투리를 알아듣고 흉내도 낼 수 있는 정도로 일본어가 늘었다.
일본어를 전공한 직원이 입사하였는데 국제통화 중에 일본 바이어가 나를 바꿔달란다고 수화기를 넘겼다. 받고 보니 일본어를 전공한 직원이 사투리를 못 알아들으니 내가 듣고 전달해 달라는 것이었다. 절실함으로 무장한 실전 전투 일본어가 빛을 발한 경우였다.
그러나 그 후로도 지금까지 체계적으로 일본어를 배우지 않아 노인들이나 여자들, 어린아이들과의 대화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 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과의 대화 기회가 없었고 필요도 없다 보니 경어나 하대어를 익힐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1962년 부산에서 출생한 안영환 대표이사는 30년 넘게 신발업계에 몸담은 신발전문 경영인이다. 1988년 ㈜선경(현 SK네트웍스) 신발사업부에 입사, 평사원을 거쳐 2002년 국내 신발멀티숍의 새 지평을 열었던 에이비씨마트코리아를 창업했다. 2011년 3월까지 에이비씨마트코리아 대표이사를 지내고 2016년부터 현재까지 슈마커그룹(SMK T&I, JD스포츠코리아)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