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패션쇼 기획시리즈 1탄
휠라 부활 프로젝트 두 번째 이야기
지난 글에서는 ‘휠라’의 과거를 짚어봤다. 이번에는 휠라의 성공과 영광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본다. ‘휠라’의 성장, 즉 휠라코리아 인수에 이어 글로벌, 아쿠쉬네트 인수까지 숨 가쁜 행보를 톺아볼 예정이다. 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대부분의 M&A가 그렇지만 아주 은밀하게 진행되고, 또 금융권과 관련된 내용이 많아서 아는 게 많지는 않다. 다만 당시 있었던 소소한 에피소드와 패션계 사람들과 휠라 직원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정리하는 수준에서 마무리할 계획이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윤윤수 회장과의 인연으로 국내 진출한 휠라는 100% 이태리 자본으로 설립됐다. ‘휠라’의 한국 지사였던 휠라코리아는 처음에는 수출 사업부터 시작했다. 윤 회장은 휠라코리아 설립 전부터 휠라에 신발을 수출하는 업무를 담당했기 때문에 휠라코리아 설립은 윤 회장의 사업 확장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물론 휠라코리아는 이태리 패션스포츠 ‘휠라’의 국내 영업에 방점을 두고 설립된 것이지만 초창기에는 본사에 수출 물량도 상당했다.
이렇게 설립된 휠라코리아는 설립 당시 내수와 수출, 크게 두 파트로 사람들을 꾸렸다. 그리고 내수부문이 커지면서 상품기획과 영업이 또 다른 축으로 나눠졌다. 이 과정에서 휠라만의 조직문화가 만들어진다. 외부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줄 세우기라고도 부르곤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휠라만의 조직문화는 글로벌 휠라를 인수할 때까지 이어진다. 그 때까지 초창기 멤버들이 휠라의 조직을 주도했다는 말이다. 물론 글로벌 휠라 인수 이후에도 이런 문화가 지속되지만 결국 새로운 문화와의 충돌은 불가피해지는데... (휠라의 초창기 멤버와 휠라맨, 그리고 사람들은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어쨌든 ‘휠라’는 런칭 초반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승승장구한다. IMF를 극복한 후에도 성장은 지속됐고, 국내에서 경영 능력을 인정받던 윤윤수 회장은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의 존재를 과시하게 된다. 윤 회장은 지난 2003년 미국 투자 전문 서버러스의 투자를 바탕으로 휠라USA와 함께 SBI(Sport Brands International)를 설립하고 글로벌 휠라를 인수하는데 참여한다. 당시의 인수방식도 기존과 다르다며 언론을 장식했는데, 이것이 내부경영자인수(MBO, Management Buy-Out) 방식이다. MBO는 내부 경영진이나 임직원이 사업의 일부나 전체를 인수하는 것을 말한다. 종업원지주제와 유사한 구조로도 이해할 수 있다. 이 때 휠라 글로벌의 본사가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옮겨지게 된다. 사실 이번 SBI의 휠라 인수에는 유럽의 경제 위기와 이탈리아 ‘휠라’의 부진에서 비롯된 것이다.
윤 회장은 이번 글로벌 휠라 인수에 깊숙이 개입하며 글로벌에서의 자신의 영향력을 높일 수 있었다. 이어 2005년 윤회장은 SBI로부터 같은 MBO 방식으로 한국의 독자적인 경영권을 확보하게 된다. 쉽게 말해 휠라코리아를 내부경영자인수 방식으로 윤 회장 주도 하에 인수한 것이다. 당시 윤 회장은 휠라코리아를 인수하기 위해 종업원 지주제 방식으로 별도 법인을 만들었다. 이 때 만들어진 투자법인의 이름은 패션플라워로 기억된다. 그 때 휠라코리아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은 작게는 몇 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까지 투자했다. 일부는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일부는 이에 부정적인 시각을 나타냈는데 결과적으로 이 때 확보한 주식이 나중에는 최소 10배 이상의 가치를 가져다주게 된다. 이 중 일부 임원은 수백억원대 자산가가 돼 퇴직하기도 했다.
이렇게 휠라코리아가 독립 법인으로 분리된 후 윤 회장과 경영진들은 2007년 GLBH홀딩스를 설립해 ‘휠라’의 글로벌 판권을 가진 SBI로부터 전세계 사업권을 전격 인수한다. 한국의 GLBH홀딩스가 70여개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휠라’의 본사가 된 것이다.
여기서 잠깐, 이 때 경험했던 ‘휠라’와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휠라’ 출입기자로 근무하던 2003년인가, 2004년쯤 있었던 일이다. 휠라코리아가 ‘휠라’의 한국 판권을 인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기사를 썼다. 파장이 만만치 않았다. 휠라 홍보실에서는 이 기사가 터무니없는 오보라며 정정보도와 함께 인터넷에서 기사를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 쨍쨍한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소스가 확실했으니 사실이 아닐 확률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기사 수정은 불가하며 이와 관련된 휠라코리아의 입장이 있으면 반론보도로 처리하겠다며 절차대로 응대했다. 이렇게 몇 번의 핑퐁이 있었고, 어느 임원의 경고성 발언을 들은 후 회사로 팩스 한 장이 날아들었다. 000 기자의 휠라 출임을 금한다는 내용의 협조문이었다. 요즘 말로는 내용증명 쯤 되겠다. 모든 언론사에 배포한 협조문이 내게도 도착한 것으로 보인다. 한 동안 휠라를 출입할 수 없었지만 휠라의 인수는 사실로 확인됐고 내 명성은 한 층 높아졌다. (뿌듯)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때 내게 막말을 퍼부었던 당시 홍보 담당 임원은 지금도 매년 몇 번의 술자리를 함께할 정도의 사이가 됐다.
휠라의 글로벌 경영권을 확보한 윤 회장은 다시 한번의 도전에 나선다. 2011년 미래에셋자산운용 등 국내 사모펀드와의 컨소시엄으로 미국 포춘브랜즈로부터 ‘타이틀리스트’와 ‘풋조이’를 보유한 미국의 골프용품기업 아쿠쉬네트를 인수한 것이다. 인수금액은 1조3천억원. 당시 휠라코리아의 연 매출이 3천억원 안팎에 불과했으니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도 비교되기도 했다. 골리앗을 누른 다윗은 2016년 10월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하며 다시 한 번 대박을 터트린다.
결과적으로는 아쿠쉬네트의 인수가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되지만 과정은 평탄하지 않았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처음부터 쉽지 않은 일이다. 덩치의 차이가 너무 컸다. 그래서 휠라는 전략적 투자자와 함께 인수전에 참여했는데 댓가는 혹독했다. 재무적인 투자자는 자신의 투자 수익이 보전되지 않으면 가차 없다. 당시 휠라코리아의 영업이익으로는 이들에게 투자 수익을 보전할 수 없었다는 게 시장 안팎의 분석이었다. 시장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해외 주요 국가에서 ‘휠라’ 라이선스 권한을 장기 계약했고 미래지향적인 브랜딩 전략보다는 영업이익률을 높일 수 있는 판매 전략을 펼쳤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한 때 급전을 마련하기 위해 돌려막기를 한다고 폄하하기도 했다. 휠라 내외부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틀린 평가는 아닌 듯하다.
리스크 관리는 성공했다. 휠라는 아쿠쉬네트의 NYSE 상장으로 재무적 투자자로부터 지분을 확보해 현재 52.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아쿠쉬네트를 휠라코리아의 자회사로 편입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휠라코리아가 100% 지분을 가진 GLBH홀딩스가 휠라룩셈브크크와 함께 전세계 휠라의 지사와 라이선스 권한을 관리하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는 안타와 합작투자법인을 설립해 ‘휠라’를 전개하고 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