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 1 - 보세 매장에서 2조 매출 기업으로
보세 매장에서 굴지의 패션기업으로 성장한 이랜드. 패션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랜드와 같은 성공 스토리를 꿈꿔 봤을 것이다. 신화로까지 불리는 이랜드의 성공은 단순한 우연이나 기회 포착 정도로 치부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성공한 기업이 모두 그렇듯이 이랜드 역시 경영전략에서 인사, 마케팅, 조직문화 등에서 남다른 면모를 보였다.
최근에는 이랜드 출신 인사들이 패션업계 요직에 골고루 포진해 산업의 양적, 질적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프랜차이즈 유통 전략에서 상품 소싱, 조직 관리, 지식 경영까지 다양한 범주를 넘나들며 이랜드의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랜드 사단이 패션업계를 주무르고 있다”는 자조적인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만큼 부러움의 대상이 대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지난 80년 이대골목 ‘잉글런드’에서 매출 10조원을 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이랜드의 성공비결을 점검해본다. (이 글은 필자(B급인생)이 과거에 쓴 글을 리라이팅한 것임을 밝힙니다. )
글 싣는 순서
Ⅰ. 이랜드의 성장과정
Ⅱ. 이랜드의 노하우
Ⅲ. 이랜드의 맨파워
Ⅳ. 이랜드의 시스템
Ⅴ. 유통강자로 부상
Ⅵ. 영토확장 어디까지
이랜드의 성장과정
이랜드의 지난 역사는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하나는 매출 외형 성장의 관점에서, 또 하나는 사업 다각화 등 질적 성장의 관점에서다.
외형적인 면에서 보면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를 전후로 나눌 수 있다. IMF는 다양한 성장 동력으로 꾸준히 사세를 넓히던 이랜드에게 커다란 시련을 안겨주었다. 매출이 절반으로 토막났고 이에 따라 법인 통폐합과 건설부문 등 일부 사업의 정리 등 강력한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질적 성장 과정은 크게 6단계로 나눌 수 있는데 연도별로 보면 1980~1987년 출범/태동기, 1988~1993년 성장기, 1994~1996년 성숙기, 1997년~1999년 재편기, 2000년대 재도약기, 2010년대 고도 성장기고 구분할 수 있다.
이랜드는 지난 87년 법인으로 전환하면서 다수 브랜드를 런칭했고 94년 유통, 건설, 식음료 등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97년에는 IMF로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2000년 들어 새로운 경영기법을 도입, 또 다른 확장전략을 펴게 된다.
1. ‘잉글런드’의 탄생 (1980~87년)
이랜드는 1980년 이대앞에 ‘잉글런드’라는 작은 보세 옷가게에서 출발했다. 당시 국내 패션유통은 고급 브랜드보다는 보세 매장들이 주도하고 있었다. 재래시장이 패션을 주도하는 시기였던 것이다. ‘프로스펙스’, ‘나이키’ 등 일부 스포츠 메이커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기도 했지만 전체 패션시장의 70% 가량을 재래시장에서 담당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랜드가 프랜차이즈 방식의 새로운 유통전략을 선보이며 패션 유통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특히 83년 교복 자율화 시행으로 중고등학생들 사이에 캐주얼 착장이 일반화된 것도 이 같은 성장을 뒷받침했다.
이런 시대 상황과 함께 이랜드의 차별화 전략도 주효했다. 당시 패션 브랜드 시장은 대기업 계열 패션기업과 유명 스포츠가 주도하고 있었는데 가격이 높아 일반 고객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다. 이랜드는 1만9,800원, 2만9,800원대 제품을 내놓았다. 저가 캐주얼 브랜드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이랜드는 원색의 화려한 컬러와 다양한 문양, 디자인의 제품을 출시했다. 이는 이렇다 할 디자인 포인트가 없었던 패션시장에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이랜드식 착장법이 생겨나면서 많은 학생들이 교복처럼 이랜드의 옷을 입게 됐다.
2. 신규 런칭, 라인 확장 등 多 브랜드 전략(1988~93년)
이랜드는 브랜드 ‘이랜드’의 성공을 바탕으로 83년 ‘브렌따노’, 85년 ‘언더우드’, 89년 ‘헌트’ 등 유사 브랜드를 잇따라 출시했다. 또 90년 쥬얼리 전문 브랜드 ‘로이드’, 91년 여성복 ‘로엠’, 94년 ‘푸마’, ‘더데이’, 95년 ‘투미’, 95년 ‘쉐인’ 등을 출범한다. 런칭하는 브랜드마다 성공을 거두면서 다 브랜드 전략을 펴게 된 것이다. 또 라인 익스텍션에 나서게 되는데 이 때 등장한 브랜드가 ‘리틀브렌’, ‘베이비헌트’, ‘이랜드주니어’, ‘헌트 이너웨어’, ‘언더우드스쿨’, ‘로엠걸즈’ 등이다.
이처럼 다 브랜드 전략을 펴면서 이랜드는 새로운 전환기를 마련한다. 공채 1기 선발과 법인으로의 전환이 그것이다. 이랜드는 85년 공채 1기들을 선발하면서 새로운 조직문화를 만들었다. 이전까지 박성수 회장을 비롯한 창립 멤버들의 카리스마에 의한 경영이었다면 공채 직원 선발 이후는 이랜드만의 조직문화에 의한 경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공채로 선발된 초창기 멤버들은 당시 분위기를 ‘규율은 있으나 자유가 보장된 문화’였다고 말한다. 어떤 이는 학교 서클 분위기였다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일에 대한 열정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특히 검소한 생활과 철저한 교육은 또 다른 도약을 가능케 한 계기였다고 입을 모은다.
이처럼 조직이 방대해지면서 이랜드는 87년 법인으로 전환하게 된다. 법인 전환이후 신규 브랜드 런칭과 라인 익스텐션이 빠르게 진행됐다. 이 같은 사업 확장으로 93년에 계열 브랜드 매장수가 2,000개에 달했고 매출액도 5,000억원으로 성장했다. 이 시기 이랜드는 가격 합리화와 투명한 거래관계 확립, 해외생산 확대에 따른 안정적 가격 정책 등의 업무 프로세스의 시스템화에 나서게 된다.
3. 유통, 식품, 건설, 여행, 호텔 등 사업 다각화(1994~96년)
패션업계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듭한 이랜드는 94년 국내 최초의 백화점식 할인점이라는 새로운 유통업태를 선보인다. 이를 발판으로 ‘피자몰’로 식품 사업에 진출한 데 이어 96년 설악켄싱턴호텔을 출범시켰고 건설, 여행 등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패션 전문 기업의 한계를 뛰어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공격적인 성장 드라이브였다.
특히 2001아울렛은 패션 아울렛을 기초로 식품, 생활, 문화 등을 포괄하는 백화점식 시스템에 저렴한 가격의 할인점을 믹스한 신선한 시도였고, ‘피자몰’은 식품 산업에서 이랜드 신화를 만들기 위한 도전 정신이었다. 그러나 상품 공급과 운영 시스템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안정화되는데 몇 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일각에서는 무리한 사업 확장 때문에 성장 동력이었던 패션사업이 오히려 위축되는 역효과를 낳았다고 비판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4. IMF 위기와 재기(1997년~99년)
이랜드의 성장 엔진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97년 말 IMF 외환 위기로 이랜드 뿐 아니라 국내 거의 모든 기업들이 도산 직전까지 몰리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이랜드는 다른 기업보다 상황이 더욱 좋지 않았다. 의류업계의 성장 둔화세가 뚜렷하게 나타났고 경쟁 브랜드들의 과당 경쟁으로 이랜드의 가격메리트가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랜드는 계열사 통합과 함께 정리해고 등 사업 및 인적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또 사업부서를 수익경영체제로 전환하고 재무구조의 개선과 경영관리 시스템 혁신 등 기업 회생에 모든 것을 걸었다. 당시 건설부문과 일부 패션 브랜드를 중단하는 등 비수익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했다. 또 절반에 가까운 인력을 감원했다. 하지만 이 같은 강력한 구조조정에 대해 노조와 해고 인력들이 크게 반발하면서 당시 사회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 문제는 이랜드의 아킬레스건으로 아직도 남아 있는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하지만 인적 구조조정이 패션업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때 많은 이랜드 출신 인사들이 패션업계에 진출, 이랜드의 경영전략과 매장관리, 마케팅 등의 노하우를 전파했기 때문이다.
이런 시련을 딛고 이랜드는 98년 해외자본 3,200만 달러를 유치하는 한편 99년 아리랑 구조정기금에서 333억원을 투자받아 재무구조 안정화에 힘썼다. 98년 이후 매년 매출 25%, 순이익 80%대의 급성장을 이어간 것도 이 같은 노력 때문이다.
5. 지식경영과 M&A로 성장전략 제시(2000년대)
이랜드는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2000년에 새로운 경영기법을 발표, 업계는 물론 국내 경제계를 놀라게 했다. ‘지식경영’이 바로 그것이다. 지식경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지식 자본과 인력 등을 중심으로 기업을 경영한다는 새로운 기법이다. 또 지식 노동자를 양산하기 위해 지식창고를 만들어 새로운 아이디어 뱅크 역할을 하게 했고, 이것은 결국 양질의 경영 노하우를 축적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지식경영은 곧바로 힘을 발휘해 2001년 전 브랜드 흑자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이랜드는 이때부터 선택과 집중, 지식경영 등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에 나서게 된다. M&A와 세계화 전략이 이 같은 경영전략의 일환이었다. 지난 2003년 ‘캡스’, ‘뉴골든’, ‘앙떼떼’, ‘베이비루니툰’ 등 아동복과 ‘피오루치’ 등 여성복을 인수했다. 또 중견 여성복업체 데코를 인수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랜드 M&A의 결정판은 뉴코아를 인수한 것이다. 당시 1차 선정과정에서 세이브존에 밀리기도 했지만 결국 6,000여억원을 들여 뉴코아를 인수, 유통 기업으로의 면모를 갖춰나가게 됐다. 이어 프랑스계 할인점이었던 ‘까르푸’를 인수해 대형마트 사업에 진출했다. 또 ‘만다리나덕’과 ‘케이스위스’ 등 글로벌 외환위기 당시 해외 브랜드를 인수하는 등 사세를 글로벌로 확대했다.
그러나 무리한 인수와 인수 후 경영 정상화에 실패하면서 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힘든 시기를 특히 ‘까르푸’를 인수한 후 재오픈한 ‘홈에버’는 이랜드에게 아직도 아침 손가락으로 남았다. 이랜드 식 경영에 반발한 노조와 이를 강압적으로 제압한 사건은 노동계가 이랜드를 절대악으로 보는 계기로 작용했고 이로 인해 업계에서는 이랜드의 지속가능경영에 의문을 제기하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어쨌든 이랜드는 이후 유통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 NC백화점과 NC아울렛 등으로 압축하고 자신의 강점인 상품 소싱을 바탕으로 한 확장 전략을 펴게 된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6. 글로벌 시장 공략과 고도 성장기(2010년대)
2000년대 후반 글로벌 외환위기로 미국과 유럽은 큰 혼란에 빠졌다. 이랜드는 이 틈을 이용해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비즈니스에 적극 나선다. 특히 중국에서는 압도적인 성과를 거두며 한때 이랜드의 성장 동력을 국내에서 중국으로 이전하는 호기를 부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전략은 중국의 저성장 전략과 사드 사태 등으로 위기를 맞는다.
과도한 중국 의존 정책은 한 때 이랜드를 재계 서열 30위라는 영예를 안겨주기도 했다. ‘티니위니’, ‘모던하우스’, ‘뉴발란스’ 등은 한국에서는 물론 중국에서도 고속 성장하며 불패 신화를 만들어갔다.
하지만 이런 고도 성장이 오히려 이랜드의 위기를 자초했다. 중국이 저성장 기조로 돌아서며 성장에 제동이 걸렸고 이에 따라 자금 흐름에 악영향을 미쳤다. 이에 따라 지난 2016년 전후로 이랜드는 매각설과 부도설에 휩싸이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에 대한 자구책으로 이랜드는 자산 매각 및 자본 유치에 적극 나선다. 중국 ‘티니위니’ 사업을 매각했고 ‘모던하우스’를 한국의 홈플러스에 매각했다. 또 이랜드월드의 상장을 전제로 투자자금 유치에 적극 나서 부채비율을 낮췄다.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랜드의 위기를 지금까지 진행중이다. 이유는 위에서 언급했 듯이 이랜드라는 기업 이미지가 금융계와 노동계에서는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쁘게 정착됐기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이랜드만의 차별화 전략
이랜드는 창립 초기부터 새로운 경영기법을 도입, 남들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를 요약하면 ‘생산은 아웃소싱, 마케팅은 프랜차이즈, 본사는 기획과 머천다이징, 디자인 기능 보유’라고 할 수 있다. 생산의 아웃소싱으로 인건비 절감과 신속한 수요 예측이 가능하며 프랜차이즈 방식의 매장은 강력한 광고 매체로 활용됐다. 본사는 상품을 만드는 일에 열중하면 된다. 이랜드는 현재 본사 실무부서를 매트릭스 조직으로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디자인의 경우 CDO(Chief Design Officer)실을 두고 사업부의 디자인을 컨트롤하는 방식이다. 생산과 기획, 마케팅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슬림한 조직구조로 업무에 집중한다는 기본 전략이다.
또 중저가 캐주얼 시장 개척을 위해 선보인 가격전략 역시 중요한 경영 기법중 하나. 당시 이랜드는 유명 브랜드의 경우 가격이 너무 비싸고 재래시장은 옷의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시장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가격과 브랜드 제품에 대한 신뢰도를 제시,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는데 성공했다. 지금도 이랜드는 이 같은 전략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정책을 입안한 이후 중고가 시장에 진출하는 등 또 다른 도전에 나서고 있다. ‘푸마’ 등은 시장에서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또 다른 차별화 전략은 브랜드의 이미지 구축을 위해 대리점의 통일화를 추진한 것. 보세 매장이 상권의 절반이상을 차지했던 당시 상황을 감안한다면 이곳저곳에 동일한 매뉴얼로 전시된 이랜드 매장이 돋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
이랜드 스피릿
이랜드에는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가 있다. 옷 입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기독교 문화도 그 중 하나. 박성수 회장이 독실한 신자이고 자신이 늘 사업과 선교 활동은 함께 있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때문에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절약과 정직은 이랜드의 기본 이념이 되어 버렸다. 초창기 사무실 책상을 중고 집기로 마련했던 일과 도시락문화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 특히 도시락 문화는 비공식적인 의사소통 창구로 이용되기도 했다. 업무상 어려운 얘기를 점심시간에 맞춰 나눌 수 있다는 것.
또 이랜드 사람들은 게릴라부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모든 일에 관여했다. 재고 처리에서 특판, 매장 오픈 및 관리, 배송, 청소 등을 모든 직원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교육에 있어서도 이랜드는 남달랐다. 재무, 경영, 마케팅 등 필독서가 정해지면 직원들은 그 책을 외울 정도로 공부했다. 6개월에 한 번씩 있는 필기시험과 구술시험은 그들만의 통과의례였던 셈이다.
이랜드 출신의 한 인사는 “이 같은 모든 과정은 직원들의 열정에서 비롯됐으며 특히 최고경영자의 리더십에 대한 신뢰가 밑바탕에 있었다”며 박회장의 카리스마에 대해 말한다.
박회장은 새벽 4시에 중고 자동차로 출근하며 위에 나열됐던 이랜드의 정신을 몸소 실천했다고 한다. 특히 월마트의 창시자 샘월튼의 근검절약 정신을 강조하고 자신의 신념과 행동을 일치하려는 노력 등이 신뢰로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인다.
이랜드의 미래
이랜드는 향후 성장전략을 크게 세 가지로 제시한다.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로 보면 선택과 집중, M&A를 통한 성장, 세계화가 그것이다. 이런 전략을 통해 2010년 매출 7조원, 수익 1조원 달성과 세계 100대 브랜드 진입이라는 목표를 설정했으며 궁극적으로는 세계 최고의 패션유통 지식기업이 된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이는 일단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선택과 집중 전략은 해당 시기에 가장 성과를 올릴 수 있는 사업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현재 유아동 및 성인 캐주얼 중심의 패션부문과 2001아울렛 등 할인점에 핵심역량을 집중하고 향후 전자상거래, 외식업 등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M&A 전략은 또 다른 성장 엔진으로 최근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가치가 높은 기업이나 브랜드가 매물로 나오는 사례가 많은데 이 같은 기업과 브랜드를 인수, 이랜드만의 경영기법을 가미,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있다. 이는 브랜드 런칭과 안정화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 위험요소를 줄이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국내 기업에 국한하지 않고 글로벌 기업도 대상으로 삼을 계획이다.
이랜드는 세계화 전략으로 지난 90년대 초반부터 생산기지와 마켓조사 차원에서 영업망 진출 등을 추진해왔다. 현재 베트남, 스리랑카 등에 현지 법인을 설립, 대규모 생산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랜드’, ‘스코필드’ 등은 중국에 150여개 매장을 전개하고 있다. 또 지난 99년 미국에 진출한 ‘이랜드키즈’는 500여개 매장을 통해 연간 1,000~1,5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랜드는 자체 브랜드의 세계화와 함께 세계적인 브랜드를 운영하는 방안을 고려, 유명 브랜드의 라이선스나 M&A를 검토하고 있다.
이랜드 그룹 주요 연혁 (창업주 : 박성수 회장)
1. 이화여대 앞 '잉글런드' 오픈 (1980년)
2. '이랜드' 법인등록 (1986년) → ㈜이랜드
3. 아동복 사업 진출 (1989년)
4. 시계/주얼리 사업 진출 (1990년)
5. 여성 캐주얼 부문 진출 (1990년)
6. 외형매출 5천억원 달성 (1993년)
7. 유통업-2001아울렛- 진출 (1994년)
8. 식품사업 진출 (1994년)
9. 내의사업 진출 (1994년)
10. 호텔사업 진출 (1996년)
11. 국내 유통업체 최초 'ERP시스템' 도입 (2000년 2월)
12. 국내기업 최초 '지식자산표' 발표 (2000년 3월)
13. 지식경영 대상 수상 (2000년, 2001년, 2002년)
14. 전 브랜드 흑자 달성 (2001년,2002년)
15. 매년 순이익 10% 사회환원 공식 발표 (2002년 12월)
16. 이천일 아울렛, ABS(자산 유동화 증권) 1,500억원 발행 성공 (2003년 1월)
17. 패션브랜드 인수 - 엘덴, 뉴골든, 캡스,앙떼떼,루니툰 (2003년)
18. 데코 M&A 본계약 체결 (2003년 8월)
19. 뉴코아 본계약 체결 (2003년12월)
20. 이천일아울렛, 이랜드월드, 이엘인터내셔날 3개법인 통합 (이랜드월드, 2004년 12월)
21. 그랜드백화점 강서점 및 강서마트 인수를 위한 MOU 체결 (2005년 5월)
(이후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