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의 품격은 구두에서
신발은 아마도 인류 문명의 탄생 및 발전과 괘를 같이 했다고 볼 수 있다. 도구를 사용하고 신체를 보호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의류가 생겨났고 신발 역시 같은 목적으로 탄생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오랜 전통처럼 신발의 변천사도 재미있다. 그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에도 구두(샌들)의 유래를 설명하는 에피소드가 나올 정도다.
전문 자료를 보면 BC 1600~1200년경 메소포타미아 카시트 시대에 바빌로니아를 통치하던 이란 국경지대의 산악부족들이 부드러운 형태의 구두를 신었다고 한다. 또 그리스 문명이 지배하던 BC 5세기 에트루리아인들은 높은 굽에 끈이 달리고 발가락이 드러나는 구두를 신었다고 나온다. 중세시대에는 무두질하지 않은 가죽을 모카신 형태로 만들어 신다가 나중에 발목 주위를 버클이나 끈 등으로 조이게 되었다. 또 한 때 구두의 앞 코(토, TOE) 부분의 길이를 길게 하는 유행이 일기도 했다. 반면 여성 구두는 남성 것과 비슷했지만 풍성한 옷 아래로 감춰졌기 때문에 덜 화려했다. 또 프랑스의 경우 더러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하이힐이 등장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다음’ 백과사전 참조)
우리나라에서는 개화파들과 외교관들이 서양식 구두를 신고 국내 들어오면서 시작돼 갑오경장 후 양복이 공인되면서 상류 귀족사회에서 구두가 일반화됐다. 당시 구두는 목이 발목 위까지 올라오고 발등부터 버튼이 달려 잠그는 장화형의 버튼부츠였다고 한다.
요즘의 구두는 정장을 입을 때 신는 비즈니스화와 캐주얼슈즈를 통칭하는 브라운슈즈로 나눌 수 있다. 남성 구두의 경우 굽의 높낮이와 토(앞부분)의 형태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특히 옷 입는 스타일에 따라 구두의 형태와 디자인도 달라질 수 있다.
이런 구두는 당연하게도 수작업으로 제작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수제화가 대량 생산의 공장체제로 전환되는 계기를 마련한 업체가 금강제화다. 이어 엘칸토와 에스콰이어가 시장에 가세하고 한참 동안 이른바 제화 3사가 구두 시장을 주도했다. 이들 3개 브랜드의 시장 점유율이 70%를 넘어섰고 이들의 경쟁은 상품권 싸움으로 옮겨 붙었다. 하지만 과도한 상품권(외상 매출) 남발로 IMF 이후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현재 금강제화만이 옛 명성을 이어가고 있고 엘칸토는 이랜드에, 에스콰이어(EFC)는 패션그룹형지의 그늘 아래로 들어갔다.
IMF를 전후로 잘나가던 제화 3사가 위축된 반면 ‘탠디’, ‘소다’와 같은 살롱화 브랜드들이 크게 부상했다. 살롱화는 수제화와 기성화의 중간 단계의 제작방식을 일컫는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스타일과 사이즈를 측정해 공장에서 생산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많은 수의 소형 공장을 협력업체로 가져야만 한다. 물론 기업 규모가 커지면서 기성화와의 차별성이 상당히 줄어 현재는 일부 라인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반면 최근 슈즈 시장에서 전통적인 수작업 방식으로 상품을 공급하는 이른바 디자이너 슈즈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또 성수동에 수제화거리가 등장하는 등 지자체와 업체, 장인들이 새로운 비즈니스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사실 기성화가 판을 치는 와중에도 멋쟁이들은 맞춤구두를 고집해왔다. 옷도 그렇지만 신발도 자신의 사이즈에 딱 맞는 것이 가장 좋지만 가격이나 시간 등을 고려해 이미 만들어진, 이른바 기성복을 입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멋 내기에 중점을 두는 사람이라면 옷도 그렇고, 신발도 수제화를 애용해보길 권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하나, 성수동 수제화 거리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초까지 우리나라 수제화 거리는 서울역 주변에 형성됐다. 구두를 만드는 데 필요한 가죽을 조달하기 위해 서울역 주변에 수제화 제작 단지가 형성됐다는 것. 서울역에서 시작된 수제화 제작 단지는 명동과 소공동 등의 판매점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기도 했다. 그런데 서울역을 비롯해 명동 및 소공동의 발전과 재개발로 수제화 제작 단지는 서울에서 한 참이나 떨어진 성수동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하지만 수제화의 수요가 줄어들면서 성수동은 옛 명성을 잃은 지 오래고 명맥마저도 흔들리고 있다.
어쨌든 자신을 멋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할 수 있는 수제화 매장을 찾으라고 권하고 싶다. 하지만 일반적 디자인과 다양한 상품 중 내게 맞는 것을 고르고 싶다면 ‘금강제화’, ‘탠디’, ‘소다’ 등 대형 브랜드 매장을 가면 된다. 이들 매장은 컨셉과 가격이 각기 다른 여러 브랜드가 있다. 선택의 폭이 넓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가격이 걱정된다면 대형마트에 가면 저렴한 가격의 구두를 만나볼 수 있다. ‘미소페’, ‘미스미스터’, ‘허시파피’, ‘무크’ 등 한 때 잘나가던 브랜드들을 마트에서 팔고 있다.
멋쟁이 신사라면 신발장에 구두 몇 컬레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