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백화점’이라는 新문물 3
그해(1932년) 7월 동아백화점은 화신백화점에 상호와 상품들, 경영권 일체를 넘기게 된다. 이후 두 백화점을 연결하는 연결통로인 브릿지가 등장하여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하였다.
화신백화점은 광복 이후에도 계속 존재 하였다가 무리한 사업 확장과 경영악화, 그리고 이후 개점한 신세계백화점과 롯데백화점, 미도파백화점 등에 밀려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1987년 2월 문을 닫았고 건물은 4개월 후인 6월에 철거되었다.
1935년 1월 27일에 화신백화점 서관에서 불이 나 전소된 후 박길룡의 설계로 1937년 11월에 지하 1층, 지상 6층의 현대식 백화점 건물이 세워졌는데 이는 당시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으며 엘리베이터도 4대나 운영된 최신식의 건물이었다.
건물의 규모는 대지가 324평, 연건평이 2,034평에 외부는 화강석으로 붙이고 정문 게이트는 대리석으로 꾸며 웅장하고 세련된 모습을 선사했다. 백화점 내부에는 우리나라 상업시설 최초로 엘리베이터 4대와 에스컬레이터 2대가 설치되고 옥상에 전광 뉴스판이 설치되어 세간이 이목을 끌었다.
화신백화점이 개점하던 해에 또 하나의 대형 백화점이 탄생하는데 충무로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던 일본인인 小林源六(고바야시 겐로쿠)가 같은 해인 1935년 문을 연 현대식 백화점인 조지아가 그것이고 조지아의 한자명이 정자옥(丁字屋,초지야)이다. 후에 이 자리가 바로 ‘미도파 백화점’이 들어선 자리가 되었다.
원래 일본어 발음대로 하면 초지야라고 읽어야 하나 당시 한자를 외래어로 옮기는 기조로 인해 영문이름 처럼 조지아로 읽었고 표기했다.
일본의 남서쪽인 三重(미에현)의 津市(츠시)에서 양복제조판매업을 하던 중 러일전쟁 발발로 군복의 제조 판매를 위하여 1904년 4월 부산에 지점을 내게 된다.
1921년에 주식회사로 변화함과 동시에 본점을 경성으로 이전한다. 1934년과 35년에 남대문로의 점포를 증축하여 1939년 12,540㎡라고 하는 조선 최대의 매장면적을 가진 점포빌딩(현재의 롯데백화점 영플라자)을 완성하게 되면서부터 백화점의 시작을 알리게 되었다.
향후 본점은 경성에, 지점은 부산, 평양, 원산, 대련, 신경 등에 열었다. 현재도 양복점은 미에현에서 영업중이다. (신경특별시는 만주국의 수도이며 현재는 중화인민공화국 길림성 장춘시다.)
이렇게 되어 당시 경성에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4대 백화점이 영업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三越(미츠코시), 平田(히라타), 三中井(미나카이), 丁子屋(초지야)다. 조선 사람이 운영하던 화신백화점까지 포함하여 경성 5대 백화점이라고 불렀다. 이후 1945년 태평양전쟁이 끝난 이후 미츠코시 백화점 경성지점은 동화 백화점으로, 조지아는 중앙 백화점으로 이름을 바꾸어 달았다. 이후 중앙백화점은 6.25전쟁을 거치며 적산으로 평가되어 그 기능을 대부분 잃게 된다.
백화점 100년 역사를 돌아본 안형준씨는 현대백화점에서 20여년간 일하며 틈틈이 일본과 한국의 백화점 역사 자료를 모아 이번 글을 썼다. 안형준씨의 글쓰기는 아직 진행중이며 연재가 끝날 즈음에 백화점의 현재와 미래가 더해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