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처음 간 때는 1992년 한중 수교가 맺어지고 나서 그 이름해인 1993년 봄이었나 보다. 봉제 생산 관계로 갔는데, 중국 선양 비행장엣 5시간 동안 차를 타고 간 곳이었다. 중국에는 외국인만 쓰는 외국인 전용 중국 화폐가 있었다. 달러 교환 환율 계산도 많이 불리하였다.
당시 중국의 모습은 중학생 시절 한국 생활과 비슷했다. 다시 중국을 찾은 것은 2002년 월드컵 당시 그룹 사장단과 함께 상하이 북경 시장 조사를 위한 방문이었다. 이 방문 이후에 중국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2003년 봄 시즌부터 중국 내수 시장에 진출하여다. 그리고 1년 뒤 상하이 법인장으로 발령을 받아 2005년 초 상하이에서 살게 되었다.
내가 살던 곳은 ‘구베이’라고 외국인이 많이 살던 곳이었다. 일본 주재원과 유럽인 그리고 한국인 등이 많이 살아 현대화가 많이 진행된 곳이었다. 그 외 다른 중국인들 삶의 모습은 아직 옛 모습 그대로였다. 지저분한 길거리, 무질서, 열악한 삶의 환경 등 1970년대 말 한국의 모습을 연상케 하였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만나는 중국 직원들의 무책임한 행동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 상하이 생활 5년간 중국인 직원들의 의식을 ‘코오롱화’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2006년에 중국인 여직원의 결혼식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집에서 하는 데 3일간 동네잔치를 하는 것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치르던 6촌 큰누님의 결혼식과 흡사했다. 결혼 하루 전날 신랑이 처가에 와서 하루 지내고, 다음 날 결혼식을 하고 시댁으로 출발하면 다음 날까지 동네잔치를 했다.
한편 2008년 북경 올림픽을 준비하는 중국의 모습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했다. 상하이 전체의 재개발, 또한 거리의 청소 등등 외관상의 모습은 정말 빠르게 현대화되어 가고 있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준비해가는 과정과 거의 같은 느낌을 받았다.
2008년 북경 올림픽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지만, 변화는 2010년까지는 중국 동쪽의 대도시에만 해당되었고 서쪽은 아직 발전이 필요하다.
1964년 일본 도쿄 올림픽이 열리고 나서 일본 사회가 현대화하기 시작했고, 1988년에 한국도 서울 올림픽을 치르고 나서 변화와 발전을 이루어갔다. 또한, 2008년에 북경 올림픽을 개최하고 나서 사회발전상과 변화는 외관상으로는 같은 모습으로 발전한 듯하다.
즉, 세 나라가 20여년의 시차를 두고 변해가는 모습이 비슷했다. 내가 느끼기에는 일본은 일반 상식이 통하는 선진국이 되어 있고, 한국과 중국은 선진국 국민이 되려면 아직 노력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백덕현은 1951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서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코오롱에 입사하여 잭 니클라우스 팀장 코오롱스포츠 사업부 이사 등을 역임하며 생산과 유통 분야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1년 당시 상무 직급으로 FnC코오롱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으며, 2004년 FnC코오롱 중국법인장을 맡아 중국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2009년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대표이사로 복귀하여 코오롱그룹의 패션사업 부문을 이끌었다. 제18대 한국의류학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2016년에 제3대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