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에서 서울로 이사하려고 하는 중에 우연히 신문에서 한국패션산업연구원장 모집 광고를 보게 된다. 이것 또한 사회에 이바지할 기회라고 생각하고 응모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2016년 7월 원장으로 취임을 하게 된다.
코오롱에 근무할 때 2020년대 우리나라 패션의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며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했던 내용을 연구원과 대구지역 패션업계와 함께 공유하고 실행해보자는 마음으로 결정하였다. 정부 산업통상부와 대구시가 합작하여 설립한 한국 패션 발전을 위해 운영하던 반관반민의 형태인 연구원이었다.
현직에 있을 대 이름을 들었던 기억은 있으나 관심은 없었다. 재능나눔 봉사라는 생각과 우리나라 패션업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 취임하였으나 너무 순신한 생각이 아니었나 싶다.
일반 개인기업에서 자란 내 생각과 반관반민이라는 조직에서 자란 직원들과의 생각은 너무 달랐다. 개인기업의 조직문화와 준공무원의 조직문화는 하루아침에 조화를 이룰 수가 없다는 판단을 한 나는 임기 3년 동안 연구원의 문화를 바꿀 기회를 만들어 주자고 생각하였다.
어렵게 직원들과 한마음이 되도록 토론과 협의를 해가며 1년을 지냈다. 조직의 목표와 목표 달성 전략과 전술이 무엇이며, 왜 우리가 이러한 일을 해야 하는가? 왜 우리는 한마임이 되어야 하는가, 국가의 세금으로 급여를 받는 직원들의 자세 등 기본적인 마은드 교육을 하며 지냈다.
2017년 4월에 신임 이사장 선출이 있었다. 이사장으로 선출된 분은 의욕이 대단했다. 그간 10년 이상 연구원의 이사 자격으로 참여해 오신 분이었다. 이사장 취임과 동시에 이사회를 열어 몇 명의 이사와 대구시 과장과 결탁하여 원장의 역할을 제한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대구 패션업계의 파벌의식은 생각보다 뿌리가 깊었다. 나는 몇 번이고 새 이사장과 이야기를 해보았다. 결론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판단이 섰다. 결국, 나는 대구 패션업계의 발전에 이바지해 보겠다는 나의 꿈을 접게 된다. 물론 나의 능력에 대한 한계를 느끼며 사표를 생각했다.
나는 사직의 뜻을 이사장에게 전달하였다. 이사장은 원장 역할을 제한하는 결의안에 결탁한 이사와 협의하고 나서 곧바로 사표 수리를 통보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원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이유를 공표하고 조용히 물러났다.
임기는 3년이었으나 1년 직원들과 생활하며 연구원의 발전 방향을 잡았다. 내가 사직하고 오래 가지 않아 연구원을 15여 년 동안 좌지우지하던 몇 명의 이사들도 몇 개월 후 모두 사직하였다.
백덕현은 1951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서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코오롱에 입사하여 잭 니클라우스 팀장 코오롱스포츠 사업부 이사 등을 역임하며 생산과 유통 분야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1년 당시 상무 직급으로 FnC코오롱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으며, 2004년 FnC코오롱 중국법인장을 맡아 중국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2009년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대표이사로 복귀하여 코오롱그룹의 패션사업 부문을 이끌었다. 제18대 한국의류학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2016년에 제3대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