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感日誌) 게으른 간신은 없다.
한 해가 저무는 이 맘 때 즈음이면 떠나는 사람, 떠오르는 사람들의 자리바꿈으로 부산하다. 분명한 한 해 동안의 성과에 따른 평가의 결과라고는 하나 모두가 이에 흔쾌히 동의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책사라 부르기도 민망한 집사들의 끈질긴 생명력은 여전히 흔들림이 없고 슬기로운 회사생활에 대한 기대는 다시 다음 시즌을 기약하는 좌절이 된다. 책사 같은 집사냐 또는 집사 같은 책사냐의 차이일 뿐 인간사회 둘 이상의 조직이면 미지의 상수로 승승장구하는 측근은 반드시 존재한다.
회사의 조직도 마찬가지다. 경제 생태계에서 선의의 규제가 기대했던 공정 대신 도리어 암시장을 촉진하듯 조직 생태계에서 성과 평가는 자극과 분발 대신 평가의 과정을 왜곡하는 편법을 촉진한다. 그저 잘 짜여진 제도와 체계가 평가의 정의나 결과의 정당성을 곧 바로 담보해 주리란 기대는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특히 성과와 평가의 영향권 밖에서 이루어지는 측근의 자리바꿈은 그 나마 강변되던 제도와 원칙의 체계를 송두리째 허물게 되는 제 1 요인이 된다.
성과 평가의 형식마저 작동되지 않는 빈발하는 예외적인 경우의 수가 문제이다. 예외가 원칙을 압도하는 조직은 다수의 냉소와 무기력의 깊은 늪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사실 이러한 메커니즘은 단지 회사 조직에만 국한되는 논제가 아니다. 회사 조직이든 공공 조직이든 심지어 국가 조직이든 원칙을 초월하는 예외를 넘나드는 집사형 측근의 끈질긴 생명력은 엄존한다.
폄하적 표현으로 집사를 평가외 권역의 용칭으로 하였지만 이들의 가장 대표적인 공통점은 대단한 부지런함이다. 그야말로 게으른 간신은 절대로 존립할 수 없는 명제다. 부지런함의 대의는 좀처럼 그 성실함의 순수성에 대한 부정을 허락하지 않는다. 부지런함은 그 지향과 의도와 무관하게 언제나 선한 미덕으로 군림한다.
사실 전쟁 등 세상의 수많은 악행이 게으름 보단 도리어 부지런함을 자양분으로 하고 있음에도 나쁜 성실은 좀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잘 짜여진 거짓이 무심한 진실보다 훨씬 그럴듯하게 보여지듯 거짓 성실로 무장된 교언은 자주 거친 충언보다 더욱 총애된다.
결국 최고 경영자의 몫이다. 모든 게 사장 탓이라고 하는 게 맞느냐고 하지만 어느 경우에라도 이는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최고 리더의 책무는 모든 것에 이른다. 오너쉽이 아닌 리더쉽에서 그 만한 책무를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이는 좀처럼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는 우리 패션기업의 전문 경영자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현실은 이들조차 경영자란 타이틀이 무색하게 과업의 경영보다는 먼저 오너쉽의 심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너무도 먼 성과와 평가 정의의 정립. 이 또한 결국 최고 최후 의사결정권의 위치에 있는 오너쉽의 책무이다. 모쪼록 이 즈음이면 늘 회자되는 우리 패션기업의 한 해 평가와 이동의 어수선함이 냉소와 무기력의 반복으로 거듭되지 않기를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