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원주민은 커녕 디지털 이민자도(Digital immigrant) 아닌 디지털 이방인이 바라보는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은 도통 이해불가이다. 전화로 하면 될 것을 굳이 온라인 톡을 고집한다. 실제 대면은 물론 음성통화 조차도 극도로 기피하는 그야말로 공포(Call phobia)란 표현이 전혀 과장이 아니다.
그러니 이들은 사람이 육성으로 대면하는 대화형 AS센터 서비스를 마냥 구리다며 투덜댄다. 어린 자녀의 문자에 부모 편한대로 음성 통화로 응대했다가 구박받은 경험쯤은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해외 출장 여정 중에 그냥 길을 물어보면 간단할 것 같은 상황에서 끝끝내 구글 맵을 고집하는 그 똑똑한 우리 직원의 태도에 속을 끓이던 기억. 이제 보니 그것은 디지털 원주민인 그가 아닌 그와는 많이 다른 디지털 이방인인 나의 문제였음을 비로소 수긍하게 된다.
디지털 우선주의를 함부로 디지털 의존주의로 예단해선 안 된다. 비대면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함부로 아나로그적 사회성 결핍으로 몰아 세워서도 안 된다.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서 맞닥뜨린 흔히 MZ세대라 통칭되는 디지털 원주민 세대가 디지털 이방인에겐 사실 디지털 세상(Digital universe) 보다 훨씬 더 멀다.
대표님, 이사님이 호소하는 재택근무의 불편함이 디지털 원주민 세대에게도 당연히 그러하리란 판단은 착각일 뿐이다. 실제로 그들은 재택근무를 통해서도 영역의 구분 없이 거의 모든 과업의 과정에서 성과를 구현함에 부족함이 없다. 이 같은 차이와 다름이 단지 비즈니스 과정이 수행되는 회사 조직만의 차원이라면 사실 그리 심각할 건 없다.
문제는 소비 시장의 속성이, 그리고 그 시장의 변화를 주도하는 소비자의 차원이 바로 그 차이와 다름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기존 비즈니스 전략의 틀과 방식에 관숙된 전통적인 혁신의 굴레에 갇힌 체로는 디지털 시장경제 생태계가 요구하는 새로운 가치와 소비 효익에 다다를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소비 산업 비즈니스 전략의 최고 가치정점인 Customer driven 명제가 분명하게 가리키는 디지털가치 지향적 고객에 접근할 수 있는 출발점은 디지털 원주민 고객(Digital native customer)에 대한 이해이다. 최근 거의 모든 소비산업 대부분의 영역에서 MZ세대가 강조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접점 때문이다. 실제로 MZ세대 기대소비 수요 자체는 전체 시장 규모를 지배할 만한 영향권 미만이다. MZ세대의 소비 메커니즘이 이토록 주목 받는 이유는 MZ세대가 창출하는 당장의 수요 크기 때문이 아니다. MZ세대 소비 방식과 행태가 미래를 가늠하는 전체 소비 방식과 행태를 결정짓는 디지털 소비경제 생태계와 가장 가깝게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고객에 우선하는 가치가 존재할 수 없듯이 고객에 우선하는 기술 또한 성립할 수 없다. 차고 넘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관한 담론들. 모두 다 필요하고 또 옳은 말이다. 하지만 그저 범람하는 기술과 용어에 먼저 함몰되어 정작 결코 돈으로 살 순 없는 비즈니스의 본질 가치인 고객의 정체를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은 없어야 하겠다.
Number Talks을 이야기하며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건 언제나 숫자라고 강조하는 최현호 MPI컨설팅 대표의 칼럼 아닌 칼럼입니다. 숫자를 다루다보면 언제나 조금의 아쉬움이 남기 마련. 그래서 칼럼의 제품도 ‘유감일지’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