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의 격언 중에 ‘더 멀리 치려면 더 정확하게 쳐라(If you want to hit it farther, hit it better. / Jack Nicklaus)’라는 말이 있다. 우리 패션산업에서도 이른바 D.T.(Digital Transformation) 명제가 혁신의 키워드로 자리매김 한지도 제법 시간이 지난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D.T.는 어느덧 일부 선도 혁신기업의 아이콘 워딩이 아니라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생존의 키워드가 되었다. 그야말로 New Normal이다. 그런데 변화와 새로움을 핵심 자양분으로 성장해온 우리 패션산업의 속성을 감안하면 현재까지의 패션산업 부문에서 보여진 D.T.의 역동성은 기대치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분위기만 놓고 보면 패션산업 전반의 거대 화두는 물론 패션 기업 내부의 구체적인 미션까지 온통 D.T. 일색이기는 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저 염려가 실제적인 결과의 변화 동력이 되기는 정말 어렵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해주고 있다. 성적은 걱정 순이 아니다. 그러나 D.T. 관련 무용담은 여전히 깊은 걱정을 가상한 노력으로 착각하는 오류 일색이다. 성경에서 자주 적시되는 메시아에 대한 기대 착각마냥 실체가 소외된 D.T. 용어만을 약방문(藥方文)인양 읊조리고 있다.
패션산업 부문에서 보여지는 D.T. 관련 견인 동력의 왜곡성은 실제 현장에서 실증되는 성과의 미진함으로 반증된다. 패션산업 D.T. 견인 주체가 반드시 패션 내부의 응력(應力)이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패션소비 산업 부문의 속성에 최적화된 D.T.의 개념과 구체적인 실행 방법론은 패션소비 산업 고유 속성을 배제하고 구현되긴 불가능하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패션산업에서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성과 부진은 단지 관련 지식과 기술의 부족이 아니라 실행단계 연결의 병목현상 때문으로 판단된다. 패션산업 D.T의 활성 저하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이 병목현상은 결코 ghost traffic jam(이유를 알 수 없는 교통정체)이 아니다.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정체의 굴레를 벗어나고서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ghost jam (유령정체)이 아니다.
우리 패션산업의 D.T. 성과 혁신의 성패는 텅텅 빈 D.T. 고속도로의 확장이 아니라 접속구간의 확보와 확장에 달려 있다. 디지털 원주민은 커녕 이민자도(Digital native or immigrant) 아닌 우리 디지털 이방인이 디지털 세상을(Digital universe) 제대로, 또 쉽게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도저히 극복될 수 없는 간극을 제 아무리 고집스레 부인한다 한들 그것이 결코 사리지진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 패션기업에서 목격되는 D.T. 추진 양상은 정보와 실행을 접속하는 나들목이 실종된 D.T. 견인의 방임 아니면 왜곡된 자가 견인 두 극단만 존립한다. 사실 D.T.는 그 자체로 어떤 범위와 농도는 물론 무슨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D.T.의 목적은 그저 패션 비즈니스 프로세스 상의 속도, 편의성, 경제성이 아니다. D.T.의 가치는 궁극적인 패션 비즈니스의 성과 (실행의 결과로서 성장과 생존의 새로운 모멘텀 제공)가 전제될 때 비로소 성립된다.
Number Talks을 이야기하며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건 언제나 숫자라고 강조하는 최현호 MPI컨설팅 대표의 칼럼 아닌 칼럼입니다. 숫자를 다루다보면 언제나 조금의 아쉬움이 남기 마련. 그래서 칼럼의 제품도 ‘유감일지’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