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덕현 에세이) 나는 누구인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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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덕현 에세이) 나는 누구인가? 1


 

나는 1951년 경기도 파주군 아동면(경기도 파주시 아동동)에서 태어났다. 면 소재지의 외곽 마을이었다. 당시는 대한민국 전체가 어렵게 살던 시절이었다. 한 마을에서 하루에 세 끼를 챙겨 먹는 집이 거의 없었다. 오늘날에는 흔한 전기는 물론이고 치약, 칫솔도 없던 시절이었다.

 

부모님은 장사하면서 농사도 직접 지었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은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농사일을 거들며 자라야 했다. 작은 누님과 동생과 함께 마을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거나, 산이나 들에서 불쏘시개로 쓸 마른 낙엽을 모아서 불을 지피거나, 하루에 2번씩 길바닥에 먼지가 나지 않도록 물을 뿌리는 등의 일을 하며 부모님을 도왔다.

 

나는 달리기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운동회를 하면 달리기에 나가서 공책이나 연필 몇 자루를 받곤 했다. 그러나 몸은 허약한 편이었다. 그래서 환절기가 다가오면 부모님이 보약을 해주시곤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아마 그때 우리나라 화폐 개혁이 있었다. 그때 어머님이 화폐 개혁하기 전에 운동화나 하나 사줄걸하시며 아쉬워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는 우리나라의 경제가 어려워 미국에서 원조로 나누어 주던 옥수숫가루와 우유 찐 것을 학교에서 나누어 주었는데, 먹을 게 궁했던 시절이라 정말 맛있게 먹곤 했다. 더러는 소나무껍질이나 풀뿌리를 씹으며 하루를 지내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우리 마을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 집은 그 정도로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주위 동무들과 함께 씹어본 경험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부모님의 사업이 점점 자리 잡아 갔다.

 

부모님은 허약한 내가 서울로 기차통학을 하며 중학교에 다니는 걸 몹시 안쓰러워하셨다. 아버지는 배곯지 않도록 무엇이든 사 먹으라고 용든을 항상 넉넉히 주시곤 했다.

 

중학교 2학년 때에 담임 선생님께서 우리 집에 가정방문을 오신 적이 있다. 서울에서 시골까지 선생님이 오신다 하니 아버지께서는 굉장히 당황해하셨다. 아버지는 아버지가 짓는 논과 밭으로 안내하며 설명하시던 기억이 난다.

 

서울의 중동중학교를 마치고 용산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나는 나 자신이 많이 부족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반에서 중간 정도의 실력밖에 안 됐다. 모자란 것을 채우려면 남들보다 몇 배 더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1971년에 연세대학교에 입학한 이듬해인 197210월에는 대학에 휴교령이 내려졌다. 그래서 12월에 군에 입대하였다. 신체검사에서 체중이 49.5kg으로 계체되었다. 당시 50kg 미만은 새로 생긴 방위제도에 편입됐는데, 나는 체중을 반올림하여 50kg으로 겨우 입대했다. 군 생활은 청주 부근 증평에서 복무하였는데, 군 생활을 하는 동안 몸무게는 62kg까지 올라가서, 몸과 마음이 아주 건강해졌다.

 

 백덕현은 1951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서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코오롱에 입사하여 잭 니클라우스 팀장 코오롱스포츠 사업부 이사 등을 역임하며 생산과 유통 분야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1년 당시 상무 직급으로 FnC코오롱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으며, 2004FnC코오롱 중국법인장을 맡아 중국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2009년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대표이사로 복귀하여 코오롱그룹의 패션사업 부문을 이끌었다. 18대 한국의류학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2016년에 제3대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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