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덕현 에세이) 좋은 벗을 가까이에 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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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덕현 에세이) 좋은 벗을 가까이에 두라


 

고향 친구 대부분은 고등학교를 모두 서울로 다녔다. 서울까지 통학하며 또는 서울에서 자취하며 지내다 토요일은 모두 고향으로 내려와 일요일은 함께 지내곤 했다. 그러다 고1 여름 방학 때 의견을 모아 아버지를 모시고 함께 강가로 천렵을 갔다. 아버님 열 분과 친구 열 명이 함께 고기를 잡아 매운탕으로 아버님들께 약주 대접을 해드렸다.

 

이를 계기로 고향 친구로서 영원히 잊지 말고 함께하자고 10명의 모임에 물망초라는 이름을 지었다. 우리 물망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부는 취직하고, 일부는 대학에 입학한다. 나는 그중 대학을 선택한 사람 중 하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잡을 때까지는 일찍이 직장에 다닌 친구들이 모임에 드는 경비를 부담했다.

 

IMF 시대를 거치며 어려움이 다가왔을 때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친구, 사업을 하던 친구의 부도 등 개인별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며 한두 친구 사이에 금이 가는 듯하였다. 내가 상하이에 살 때 네 명의 친구 부부가 중국 황산을 다녀오며 상하이에 들러 오랜만에 함께 식사하였다. 모처럼 상하이로 나를 찾아준 친구 부부에게 너무나 감사했다. 부인들에게 중국에서 유명한 진주 목걸이를 하나씩 선물했다.

 

전국 각지로 흩어져 살다 보니 친구들이 함께 자리하기가 어려웠다. 환갑이 되고 친구들도 하나둘 은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친구들은 한 달에 한 번 모여 산행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함께 산행하며 지난 일들을 이야기하고 하루를 즐기는 일은 아주 즐거웠다. 고향 파주 금촌에 있는 여러 산도 둘러보았다.

 

그러던 중 한 그룹의 친구들이 모임을 초등학교 친구 모두에게 확대하자고 하였다. 그러자 한 그룹은 그냥 우리끼리 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두 의견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두 명의 친구가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되었다. 환갑을 넘기면서 고집만 남은 듯했다.

 

옛날에 환갑 지나면 어린애가 된다는 이야기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의견 충돌로 친구 열 명이 모두 함께 모이는 것은 어렵게 되었다. 가끔 식사하거나 각자 개인별로 만나서 막걸리 한잔을 하는 정도이다.

 

마음속에서 가끔 한명 한명 기억해보곤 한다. 남북철도를 처음 연장 운행할 때 개성으로 기관차를 모고 갔던 S 군이 요즈음 매스컴에 등장하였다. 나는 오랜만에 전화해서 축하해주며 건강하게 잘 지내라고 안부를 전했다.

 

 

 백덕현은 1951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서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코오롱에 입사하여 잭 니클라우스 팀장 코오롱스포츠 사업부 이사 등을 역임하며 생산과 유통 분야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1년 당시 상무 직급으로 FnC코오롱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으며, 2004FnC코오롱 중국법인장을 맡아 중국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2009년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대표이사로 복귀하여 코오롱그룹의 패션사업 부문을 이끌었다. 18대 한국의류학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2016년에 제3대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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