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1월 1일부로 스포츠 생산부장으로 부서를 옮기게 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무역 상사는 본부제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본부별로 사업의 본질과 모습이 전혀 달랐다. 따라서 관리는 회사 전체 통합 관리였으나 모든 시스템이 본부 중심제로, 본부별로 전혀 다른 모습의 회사였다.
나는 수출 중심의 봉제 사업본부에서 내수 브랜드 사업인 스포츠 사업본부 생산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봉제 사업본부에서 고객 만족이라는 개념을 배웠고, 오사카 근무로 일본 국내 유통에서 보고 들은 고객 만족에 관해 알고 있었다.
그런데 고객 만족이라는 개념이 제일 필요한 내수 브랜드 사업본부에서는 그 마인드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과거 관행이 많이 남아 있었다. 나는 부장으로 내가 맡은 부서의 문화를 2년 이내에 바꾸기로 작정했다.
부하 직원의 관행을 바꾸려면 우선 내가 바로 해야만 한다. 지금까지의 관행은 어느 부서나 다 있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관행을 다시 정리하여 회의 시간에 발표하며 “과거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그러나 앞으로 같은 관행으로 하는 직원은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하고 공표를 하였다.
당시는 생산부 직원이 한 30여명에 이르렀다. 이러한 관행을 고치려면 거의 2년을 쉬지 않고 진행해야 했다. 그리고 최고 책임자인 내가 먼저 지켜야 했다. 스스로에 대한 검증이 직원에 대한 검증보다 엄격해야 했다. 과거 다른 부서가 변화하는 데 실패하는 것은 책임자는 지키지 않고 직원들에게만 지키라고 하니 부하 직원들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협력업체에도 잘 설명하였고 같이 동참하기를 부탁하였다. 코오롱과 협력업체는 갑과 을이 아니고 대등한 수평적 관계에서 업무를 진행한다고 선포하였다. 과거의 관행을 다시 하면 협력업체에는 벌점을 주고, 코오롱 직원은 인사상 불이익이 있을 것이다. 협력업체는 다만 품질로 평가한다.
내가 봉제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협력업체의 생리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어서 협력업체와의 대화가 아주 쉬웠다. 당시 나는 나름대로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기준을 어기는 일은 절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과거에 저지른 과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도 참고만 할 뿐, 해당자들에게 어떠한 문책도 하지 않았고 다른 직원들 모르게 앞으로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하였다.
백덕현은 1951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서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코오롱에 입사하여 잭 니클라우스 팀장 코오롱스포츠 사업부 이사 등을 역임하며 생산과 유통 분야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1년 당시 상무 직급으로 FnC코오롱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으며, 2004년 FnC코오롱 중국법인장을 맡아 중국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2009년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대표이사로 복귀하여 코오롱그룹의 패션사업 부문을 이끌었다. 제18대 한국의류학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2016년에 제3대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