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말부터 오사카에서 근무하게 됐다. 당시에는 주재원은 가족과 함께 부임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래서 서울의 모 중학교 선생님이었던 집사람은 10여 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감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시급한 문제가 아이들 학교 문제였다. 그래서 오사카에 있는 한국인 학교 근처에 집을 구했다.
아마 이름이 건국 학교였고,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있었다. 건국 학교는 일본에 있는 한국 정부 쪽의 계열이었다. 큰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고, 작은 아이는 유치원에 입학하게 된다. 건국 학교는 이름만 한국 학교이지 교장 선생님을 제외한 선생님들은 모두 제일교포 선생님이었는데, 많은 선생님이 한국말을 잘 몰랐다. 한국어 선생님은 한국에서 파견하는 것 같았지만 그 외의 과목은 모두 일본말로 교육을 하고 있었다.
교육 시스템도 모두 일본식이었다. 그러니 일본말을 모르는 큰 아이는 학교에서도 신경을 많이 써 주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일본말을 모른 탓에 정상적으로 공부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일본어로 수업을 받으려면 적어도 일 년은 필요했다. 아마 큰 아이는 당시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회사 사정으로 큰 아이가 3학년과 작은 아이가 유치원을 마치지 못하고 서울로 귀임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서울에서 또 혼란을 겪는다. 한국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일본으로 갔고, 겨우 일본에서 공부할 만해지니 다시 서울로 와서 한국말로 공부해야 하니 공부가 제대로 되었겠는가?
이 문제는 큰 아이가 고등학교 시절까지 국어와 역사 등 일부 과목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큰 장애가 되었다. 이 문제로 엄마가 아이들 교육으로 많은 고생을 하였다. 다행히 엄마의 노력으로 아이들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제는 모두 결혼하여 자기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 그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빠로서 집사람과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백덕현은 1951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서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코오롱에 입사하여 잭 니클라우스 팀장 코오롱스포츠 사업부 이사 등을 역임하며 생산과 유통 분야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1년 당시 상무 직급으로 FnC코오롱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으며, 2004년 FnC코오롱 중국법인장을 맡아 중국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2009년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대표이사로 복귀하여 코오롱그룹의 패션사업 부문을 이끌었다. 제18대 한국의류학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2016년에 제3대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