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곳에서든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할 수는 없다. 물론 회사도 어느 정도 개인의 적성을 고려하여 업무를 배치하지만, 모든 조직에는 한계가 있다.
수출 담당자 시절에 업무는 정말 많았다. 주문을 받아 원부자재를 수배 생산하여 선적하고, 대금을 입금하는 등 모든 과정을 관리했다. 또 과장님 지시, 부장님 지시 등 맡은 일을 마무리하고 정리하다 보면 그날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게 너무 많았다.
이러한 일이 싸이고 싸이니 회사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대리였을 때 너무 힘들어서 사직할 요량으로 섬에 교사로 갈 수 있는지 문교부에 알아보기도 했다. 당시에는 섬마을에 교사가 부족하여 쉽게 발령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음알이로 주워들었다.
약 한달을 고민했다. 꼭 여기서 그만두어야 할까? 극복할 방법은 없을까? 3개월 동안 노력해보고 안 되면 섬마을 선생님에 지원하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장 하는 일을 개선하는 방법은 없는지 스스로 나 자신을 돌이켜봤다.
매일매일 업무 과정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찾아보았다. 한 2개월을 보내니 문제는 시간 관리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 업무는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일 60%, 과장이나 부장의 지시사항 20%, 회사 전체에서 진행하는 일 20%로 되어 있어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사전에 정리하면 나무지 일은 쉽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모아서 토요일 오후나 혹은 일요일 시간을 내서 정리하기로 하였다.
어느 토요일 오후, 다른 직원이 모두 퇴근하고 나면 혼자 남아서 그간 밀린 업무를 정리하고 다음 주에 해야 할 일을 미리 점검하고 준비해 놓았다. 다음 주 월요일에 출근하니 업무 진행이 훨씬 빠르고 쉽게 지나가서 일주일이 수월했다. 그 후 일이 밀리면 한 달에 한두번 혼자 출근하여 사전 점검을 하였다. 모든 일을 그렇게 하다 보니 회사 일이 쉽게 느껴졌다. 쉬워지니 일하는 것이 즐거웠다.
신입사원이 새로 들어오면 꼭 하는 이야기가 있다. 한 3년 선배들에게 배우고 그 후는 자신만의 업무 방식을 만들어라. 그리고 일에 밀리지 말고 일을 끌고 가는 업무 스타일을 습관화해라.
이러한 습관은 퇴직하는 날까지 지속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자연히 내가 아는 일을 하게 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고, 내가 즐거운 일을 하게 되는 것이리라.
백덕현은 1951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서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코오롱에 입사하여 잭 니클라우스 팀장 코오롱스포츠 사업부 이사 등을 역임하며 생산과 유통 분야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1년 당시 상무 직급으로 FnC코오롱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으며, 2004년 FnC코오롱 중국법인장을 맡아 중국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2009년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대표이사로 복귀하여 코오롱그룹의 패션사업 부문을 이끌었다. 제18대 한국의류학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2016년에 제3대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