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님은 잠자리 루틴이 있습니다.
첫째 전등을 켠채로 침대에 누워야 합니다. 전등을 끄고 조명등을 켜도 안됩니다.
둘째 이불을 공중에 쫙 펼쳐서 이불이 내려앉으며 몸을 감싸게 해줘야 합니다.
셋째 책을 읽어줘야 합니다. 책을 2~3페이지 읽다보면 잠깐만 하고 화장실을 다녀옵니다. 그리고 한 페이지를 더 읽고 멈춰야 합니다.
넷째 아빠는 돌아누워야 합니다. 코골이 소리가 수면을 방해하기 때문이지요.
어제도 마찬 가지로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있는데 따님이 조르르 나갑니다.
화장실을 가겠거니 했는데 웬일로 공부방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쨍!!’하며 뭔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뭔가 떨어뜨렸나 보다’ 생각하며 누워 있는데 따님이 심각한 얼굴로 들어옵니다.
“아빠 이리 와봐. 나 좀 도와줘!”
엄마에게 들리지 않게 조용한 목소리로 도움을 요청합니다.
“왜? 무슨 일 있어?”
“유리가 깨졌어?”
“유리?” 책상 유리가 깨졌나 하고 공부방에 들어가 보니 바닥에 하얀 구슬들이 모여 있습니다.
“내가 스노우볼을 깨트렸어!”
다람쥐 인형이 들어있던 주먹보다 작은 스노우볼이 깨진 겁니다.
따님은 스노우볼 깨진 흔적을 한군데 모아 놨습니다.
유리조각과 구슬들을 보다 따님의 맨발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따님의 발바닥을 다시 닦아내고, 침대에 먼저 가 있으라고 얘기했습니다.
쉽게 발을 떼지 못하는 따님을 등 떠밀다시피 해서 들여보내고 뒷정리를 했습니다
유리조각을 쓸어 담고, 혹시 모를 유리 파편들 때문에 청소기로 주변을 정리했습니다.
부녀의 부산스런 움직임에 마눌님이 무슨 일이냐고 캐묻습니다.
별일 아니라고, 자그만 유리가 깨졌다고 설명하고 따님과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따님은 방 창문을 닫다가 스노우볼이 떨어졌다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잠들기 전까지 유리파편 걱정을 합니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기 전 따님의 공부방에 들어가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손톱크기의 날카로운 유리를 구석에서 발견했습니다.
그날 따님이 잠자리에서 화장실이 아니라 공부방으로 갔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사고는 평상시와 다른 행동을 할때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익숙한 것만 한다면 새로움을 통해 얻는 재미도 없겠지요.
작은 루틴이 깨지면서 일어난 사고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나저나 따님이 다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