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과거의 일로 직원이나 협력업체에 불이익을 주면 이것이 다시 관행으로 남아 악습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될 수 있다.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에게 사심이 없어야 한다. 사심이 있으면 직원들이 바로 알게 되고 그러면 변화는 물 건너가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 주도를 10개월 정도 진행하니 새로운 문화가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본부장이 나를 브랜드 부서장으로 이동시켜주었다. 브랜드 부서와 생산부서는 제품 생산이라는 일로 연계되어 있어 새로운 견제를 할 수 있어 생산부서의 새로운 문화가 퇴보하지 않을 수 있었다.
변화를 주도하려면 사심 없는 리더와 원칙 위주의 경영, 변화의 지속성, 과거 불문 등 미래를 위한 변화가 되어야 한다. 지속적인 변화는 시간이 지나면 개혁이 된다. 이러한 시도는 1994년부터 시작했고 1997년도 IMF 외환 위기가 발생했을 때도 내가 맡은 본부는 손실이 거의 없었다.
스포츠 본부가 지금의 FnC코오롱의 바탕이었다. 아마 코오롱이 생산 분야에서 개혁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2006년 내가 중국에 있을 때 협력업체 사장이 찾아와 나에게 이야기해주었다. 협력업체는 대부분 다른 브랜드 회사와도 동시 거래를 하여 회사마다 직원들의 행동을 직접 경험하기 때문에 각 회사의 내용을 잘 안다. 협력업체 사장님들도 그들만의 모임이 있다. 그들의 모임에서 있었던 이야기라며 의류 브랜드 회사 중 개혁에 성공한 회사는 코오롱이라고 회의석상에서 이야기가 있었다 한다.
내가 생산부장 시절 시작한 변화가 외부에서 개혁했다고 느끼는데 10년이 걸렸다. 회사가 변해간다고 느끼는 데 걸리는 시간이 최소 10년이다. 그런데 그러한 개혁이 지속하지 않으면 다시 원위치가 될 수 있다. 내가 생산부장, 스포츠 본부장, 캐주얼 본부장, 그리고 1차 대표이사 기간을 지낸 기간이 변화가 지속하는 시간이었다.
그때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경영방침은 “날로 새롭게, ONE & ONLY, UN-BALANCE, 멀리 보고 계획 세우고 오늘의 작은 일부터 철저한 실행”이 중심이었다.
백덕현은 1951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서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코오롱에 입사하여 잭 니클라우스 팀장 코오롱스포츠 사업부 이사 등을 역임하며 생산과 유통 분야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1년 당시 상무 직급으로 FnC코오롱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으며, 2004년 FnC코오롱 중국법인장을 맡아 중국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2009년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대표이사로 복귀하여 코오롱그룹의 패션사업 부문을 이끌었다. 제18대 한국의류학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2016년에 제3대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