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되자 나와 작은 누님을 불러놓고 서울에 가서 둘이 자취를 하며 학교를 다니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누님은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당시 형님은 군에 계셨고 큰누님은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동생은 초등학생이어서 나와 작은 누님만 서울로 기차를 타고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신촌의 노고산 중턱에 있는 방 하나에 부엌이 달린 집을 얻어 주셨다. 작은 누님은 그때부터 나를 위해 모든 희생을 감내하셨다. 아침밥과 도시락을 준비해주고 나서 본인 학교에 가고 저녁에는 저녁 식사 준비까지 하는 등 나에게는 어머니를 대신했다. 그리고 토요일에 학교에 다녀온 후에는 같이 고향으로 가서 주말을 보냈다.
1년을 같이 자취를 하며 작은 누님의 고생 덕으로 용산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누님은 부모님의 반대로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다. 당시만 해도 여자가 무슨 대학이냐며 성차별을 당연시하던 시대였다. 나는 누님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 뒤로 형님이 제대하고 대학에 복학해서 형님, 나 그리고 작은 누님 이렇게 셋이서 서울 생활을 하게 되었다.
세 명의 서울 생활은 순전히 작은 누님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졌다. 부모님이 대학 학비를 주지 않겠다고 하시니 누님도 도리 없이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누님은 얼마나 섭섭했을까? 이미 큰 누님도 같은 이유로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그러나 작은 누님은 대학에 대한 집념이 강했다. 1년 여를 아르바이트하며 대학 입학금을 준비한 것이다. 드디어 누님도 대학에 입학했다. 당시에는 아르바이트라는 게 쉽지 않았다. 본인이 돈을 마련해서 대학에 입학하니 부모님도 하실 말씀이 없었던 것 같다.
누님은 대학 생활 4년 동안 계속 아르바이트를 하며 부모님에게서 학비를 전혀 받이 않았다. ㄱ리고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을 하고 1년을 재수하여 대학에 입학할 무렵에 누님은 대학을 졸업했다. 누님의 대학 졸업식장에서 나는 누님에 대해 한없는 감사와 자랑스러움을 느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눈이 맑고 촉촉한 작은 누님도 그간 흘러간 시간을 회상하며 가슴이 벅찼을 것이다.
(2편은 다음 주에 계속)
백덕현은 1951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서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코오롱에 입사하여 잭 니클라우스 팀장 코오롱스포츠 사업부 이사 등을 역임하며 생산과 유통 분야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1년 당시 상무 직급으로 FnC코오롱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으며, 2004년 FnC코오롱 중국법인장을 맡아 중국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2009년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대표이사로 복귀하여 코오롱그룹의 패션사업 부문을 이끌었다. 제18대 한국의류학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2016년에 제3대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