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부터 가두 대리점이 자리를 잡아가는 시대였다. 외국 스포츠 브랜드가 한국에 직접 상륙하면서 전국에 대리점을 열었고, 90년대 중반부터 골프 브랜드가 성인 캐주얼 의류로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3~4개 브랜드가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중에 내가 맡은 잭니클라우스 골프 의류는 중고생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기를 얻고 있었고, 그러니 대리점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가 회자하였다. 많은 사람이 대리점 하기를 바라던 시기였다.
사무실에서는 원칙을 세우고 원칙에 따라 대리점을 열기로 하였다. 그러나 대리점을 하겠다는 분들은 자기 계산만으로 승산이 있으면 대리점을 열겠다고 주장하곤 한다. 개인은 자본 투입에 대해 이익이 나면 대리점 운영이 가능하나 회사는 위탁판매 시스템으로 시즌 후 반품을 받아 재고를 1년차 2년차까지 팔고 나서 채산성이 나와야 대리점 운영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일반인들은 모른다.
내가 1995년 부장 시절부터 2002년 대표이사를 지내면서 대리점 오픈에 대한 부탁을 정말 많이 받았다. 특히 지방 국회의원들의 연락이 많았다. 당시 국회의원들이 나랏일에 집중해도 모자라는 시간에 유건자의 민원을 해결하느라 고생한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부장, 본부장을 지내며 대리점을 오픈하겠다고 신청한 분들에게 매장을 오픈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느라 지방 출장이 참 잦았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매장은 점주가 돈을 벌 수 있어야 하고 또 회사도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설명을 오해 없이 이해시켜야 마무리될 수 있었다.
대부분 회사 입장을 몰라서 그랬고, 알면 수긍하였으나 일부는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나에 대해 흑색선전을 하기도 하였다. 또 욕심을 내서 이야기하였다가 시간이 지나고 내 이야기가 맞는다는 것이 확인되어 감사의 인사를 한 분도 여러 명 있었다.
기억이 생생하게 나는 사건이 있다. 당시에 코오롱 브랜드가 장사가 잘되니까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을 등에 업고 매장 3개를 열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의류 사업 경험은 전혀 없었다. 내가 상담해보니 자기 위주의 단순 계산으로 수익에 승산이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사업의 리스크를 아무리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내가 제동을 걸고 있다고 억지를 부리며 나중에는 협박하는 것이었다. 누가 해준다고 Ot고, 또 누가 해주라고 하는데, 왜 다인이 안 해주느냐? 나는 우선 하나만 해보고 잘 되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고 제안했다. 잘 설득해서 우선 하나만 시작했다.
회사에서도 잘 안내를 하고 장사를 잘하도록 하였으나 본인이 한 1년 경험해 보더니 다시는 추가 매장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그분은 나에게 매장을 하나만 내주어 감사하다며, 3개를 열었으면 정말 감당하기 어려웠을 거라고 했다. 그는 한 개 매장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고 노력한 만큼 매장이 안정을 찾아갔다.
매장을 개점할 때는 정말 신중해야 한다. 회사는 매장을 열어 안되면 철수하면 그만이지만, 개인은 매장을 열어 안 되면 평생 모은 재산이 다 날아간다. 그러니 지역 상권을 정확히 분석하고 점주가 승산이 었는가를 판단하고 회사에도 도움이 되는가를 정확히 판단하여 결정하여야 한다.
백덕현은 1951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서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코오롱에 입사하여 잭 니클라우스 팀장 코오롱스포츠 사업부 이사 등을 역임하며 생산과 유통 분야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1년 당시 상무 직급으로 FnC코오롱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으며, 2004년 FnC코오롱 중국법인장을 맡아 중국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2009년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대표이사로 복귀하여 코오롱그룹의 패션사업 부문을 이끌었다. 제18대 한국의류학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2016년에 제3대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