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HChoice의 Market Story 12
청년 일자리와 패션
요즘처럼 일자리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된 적이 있었던가?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4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실업자 수는 124만5천명, 실업률도 4.4%로 IMF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15~29세 청년 실업률도 11.5%로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하다. 사실 우리 경제가 그동안 쉴 틈 없이 고속성장을 달려온 후유증으로 잠시 주춤거리는 것이라고 자위하는 것이 차라리 속 편할지 모르겠다.
공식적인 용어로서 ‘실업’이란 15세 이상의 경제활동인구가 최근 4주 동안 일자리를 잃거나 새롭게 갖지 못한 상태에 있다는 의미이다. 즉 실업률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나타난다.
실업률(%) = (실업자 ÷ 경제활동인구) × 100
여기에서 경제활동인구는 취업자와 실업자의 합이다. 그러나 문제는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어 수식에 적용되지 못하는 취업준비자, 구직에 지쳐 포기 또는 단념에 이른 사람 등 본인의 궁극적 의지와 상관없이 일자리로부터 배제되어진 사람들까지는 지표로 잡히지 않아 실재를 잘 나타내지 못한다 하여 보완된 ‘확장실업률’이라는 지표를 사용하기도 한다.
확장실업률(%) = (확장 실업자 ÷ 확장경제활동인구) × 100
* 확장실업자 = 시간관련 추가 취업가능자 + 실업자 + 잠재경제활동인구
* 확장경제활동인구 = 경제활동인구 + 잠재경제활동인구
* 잠재경제활동인구(비경제활동인구 중)
- 지난 4주간 구직활동을 했지만 취업이 불가능했던 사람
- 지난 4주 동안 구직활동은 하지 않았으나 취업을 희망했던 사람
- 지난 4주 동안 구직활동은 하지 않았으나 취업 가능한 상태의 사람
(학교 졸업 후 학원 등에 재학 중인 취업준비생, 젊은 주부 등)
이 지표에서의 청년 확장실업률도 지난 4월 자료는 역대 최고치인 25.2%를 기록하여 취업전선에 놓여 있는 청년 4명 중 1명은 전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부모님과 이웃의 눈치를 보면서 그냥 놀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1997년 11월 21일 임명된 임창열 경제부총리는 특별 기자회견을 통해 나라 빚은 많은 데 갚을 돈이 없다면서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 국제통화기금)에 돈을 빌리기로 했다는 발표를 한다. 뒤이어 금융권의 대출이율은 연 30%로 오르고, 달러 환율은 원당 2,000원선을 오르내리며 여기저기서 일자리를 잃고 길거리로 내몰리는 해방 이후 최대 혼란이 찾아 온 것이다.
패션업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업마다 내부 구조조정의 열풍은 잘 나가던 대기업부터 동네 구멍가게 수준의 영세 소기업까지 영향을 주었다. 원가절감을 위한 생산 소싱도 중국, 인도네시아 등을 찾아가는 탈한국 현상이 봇물처럼 터지면서 국내 섬유산업 자체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신입직원을 채용하는 분위기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경력자들만 스카우트하는 안정적인 고용 체제가 유행하면서 이랜드 출신의 구조조정 대상자들이 대거 패션업계에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실제 그들은 기존 업계 사람들과는 너무나 많이 달랐다. 이랜드의 기업문화는 그들을 때로는 이론가로 만들고, 때로는 시장의 전사로 만들었다. 그들의 논리는 거침이 없었고, 자신감도 충만했으며 무엇보다도 종교라는 도덕적인 이미지로 무장된 모습은 감성적 경영이거나 회계학적 경영에 순응되어져 있던 기존 패션업계에게 마치 난세에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덜어진 구세주 같은 꽤나 매력적인 존재들이었다.
일부 패션기업의 오너들과 CEO들은 앞 다투어 그들을 영입하고 자문을 구했다. ‘EXR’이 그랬고, 성주인터내셔널이 그랬으며, 심지어 대기업인 신원, 코오롱상사까지 그들 영입에 앞장섰다. 그렇다고 모두가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성공도 있었으니 대표적으로 ‘EXR’이 그에 해당된다.
다시 생각해도 이랜드 출신 인재들은 대부분이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열거했던 회사들이 그들이 놀았던 판(market)에 대해 조금 더 고민했어야 했다. 이랜드는 ‘이랜드’, ‘언더우드’, ‘브렌타노’ 등 전통적으로 중저가 캐주얼시장과 유아동복시장이 주종목이었고, 유통 역시 백화점 등의 전문점이 아닌 로드샵 형태를 추구하는 회사였다. 그런데 그들에게 럭셔리 브랜드 경영을 위임하고, 백화점 영업에 대한 자문을 구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한심스럽기 그지없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때 많은 회사들이 그랬었다.
다시 돌아와서 일자리 이야기를 계속해보자. 근래의 상황이 치열했던 IMF 외환위기 때보다도 더욱 심각하다는 게 일부 학계 및 경제지와 다수의 자영업자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패션업계라고 별 수 없다. 아니 보다 심각한 것 같다. 그때는 그래도 다양한 패션 종사자들이 각각의 전문성을 가지고 아쉬운 대로 버티어 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사람이 없다.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유능한 패션인이 없다. 그때 당시 개념 없는 경력자로 돌려 막기를 하지 말고, 힘들어도 신입 사원을 채용해서 인재를 양성했어야 했다. 만약 그랬더라면 지금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확언한다.
패션산업은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진정한 선진국은 패션문화가 흥한 나라이다. 후진국이 패션강국인 나라는 없다. 요즘처럼 업계가 죽을 쑤다보니 그 많은 의상, 섬유 관련 전공자들은 업계에 발도 붙이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고, 근로시간에 제약까지 생기니 패션인이 설 자리가 없다. 그래서 패션 꿈나무가 꿈을 키울 마당이 없어지고 있다. 암담하게도 대한민국이 패션선진국이 되는 날이 요원하게 느껴진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