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HChoice의 Market Story 9
뜻밖의 횡재 ‘UCLA’ 로또
‘괜찮은 거니 어떻게 지내는 거야, 나 없다고 또 울고 그러진 않니.......’
가수 조성모 1집 앨범 ‘To Heaven’의 타이틀곡 ‘To Heaven’의 가사 첫머리다. 이 노래와 함께 ‘불멸의 사랑’, ‘후회’ 등이 담긴 데뷔 앨범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조성모라는 신인 가수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이때가 IMF 사태로 국민 모두가 힘겨워 하던 시기인 1998년 가을이었다. 이후 잇따라 내놓은 앨범들도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조성모라는 가수는 대한민국 대중음악 Top 반열에 오르게 된다. ‘후회’, ‘다짐’ 등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그의 노래는 정통 발라드풍이었기 때문에 ‘발라드 황태자’라는 칭호까지 얻게 된다. 이문세, 변진섭, 이승철, 신승훈을 잇는 최고의 발라드 남자가수라는 것을 대중들이 인정했다는 의미이다. 실제 그의 기록을 보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데뷔 앨범 판매량 150만장으로 역대 2위(데뷔 앨범 100만장 돌파 기록은 변진섭, 신승훈, 서태지, 조성모 단 4명 뿐), 발매 4일 만에 100만장 판매 돌파(최단기간 밀리언셀러, 3집 ‘아시나요’), 한해 최다 판매량 500만장(2.5집 ‘가시나무’, 3집 ‘아시나요’), 5개 앨범 연속 밀리언셀러 돌파(1집-2집-2.5집-3집-4집), 앨범 누계 판매량만 해도 1,600만장으로 국내 가수 중 역대 1위라는 사실이 그를 입증하고 있다. 당시의 대중음악계는 아이돌 그룹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던 시대였고, 힙합, 레게 등 다양한 댄스 음악이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에 발라드 가수가 성공하기는 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만들어낸 기록이다.
곱상한 그의 외모와는 달리 조성모의 데뷔 초기 전략은 비주얼보다 오디오형으로 ‘얼굴 없는 가수’였다. 신비주의 전략일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그는 최고의 연예인이 되었고, 그를 찾는 광고 회사는 줄을 서야만 했다. 그의 모델료는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남자로서는 드물게 화장품 광고까지 나서기도 했다. 그런 조성모가 ‘UCLA’라는 조그만 패션회사의 브랜드 전속모델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가?
1990년대 중후반은 패션시장의 증폭기, 즉 고도 성장기였다. 이전의 패션 시장이 비교적 규모가 있는 기업인 삼성-에스에스패션, LG-반도패션, 코오롱-코오롱패션, 신원, 나산 등이 이끌었다면 이 무렵은 중소기업들이 대거 패션 시장에 진입하던 시기였다. 장르도 다양해지고 비록 오프라인시대이기는 했지만 유통도 폭발적으로 확장되던 시기였다. 특히 캐주얼 복종은 그야말로 빅뱅의 시대를 만났다. 그 무렵 런칭한 브랜드가 바로 ‘UCLA’라는 라이센스 캐주얼 브랜드였다.
‘UCLA’ 김애자 대표는 여성이었지만 패션업계에 근무하던 사람은 아니었다. ‘세븐일레븐’에서 유통을 접한 프랜차이즈 유통 전문가였다. 그런 그녀가 의류를 접하게 된 것은 세븐일레븐을 퇴직하고 짧은 시간이지만 지인과 함께 행사를 하면서 패션시장의 흐름을 어깨너머로 읽게 되면서부터다. 이때 백화점 내에 Shop을 갖춘 의류 브랜드와 본인이 하는 행사장 옷장사의 차이를 느끼면서 뭐라도 인지도가 있는 브랜드가 있다면 보다 더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거라는 절실함으로 브랜드 재판매회사를 소개받게 된다. 일명 ‘브랜드 브로커’라고 불리던 브랜드 재판매회사는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당시는 제법 판을 쳤다. 그때는 지금처럼 패션인들이 비즈니스적으로 글로벌해지지 못하던 시기였기에 일부 무역을 하던 사람들이 외국의 브랜드들을 선접촉해서 국내 판권, 또는 영업권한을 체결하고 이런 브랜드를 찾는 국내업자들에게 재판매하는 일종의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서 중개업을 했던 것이다.
브랜드에 목말라 있던 김애자 대표도 그들로부터 익히 들어 왔던 이름, 낯설지 않은 이름인 ‘UCLA’ 사용권리 계약을 체결하고 과감하게 캐주얼 패션 브랜드 시장에 뛰어 들었던 것이다. 이때에 바로 신인가수로 갓 데뷔한 조성모와 ‘UCLA’ 전속 모델 계약을 하게 된다. 소속사와 ‘UCLA’ 입장에서는 이제 막 관심을 받는 신인가수의 전속모델 계약이다 보니 모델료 역시 헐값에 가능했다. 김애자 대표에게 이 계약은 ‘베팅’ 성향의 투자라기보다는 저렴한 모델료의 연예인일 뿐이었다.
그랬던 조성모가 대박 가수가 됐다. 그것도 ‘UCLA’와의 계약서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말이다. ‘UCLA’ 브랜드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뜻밖의 횡재를 만난 것이다. 당대 최고의 가수를 전속모델로 보유한 브랜드가 된 것이다. 매출 증가, 유통 확장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그 바쁜 와중에도 조성모와 소속사는 ‘UCLA’의 마케팅 행사에 성심껏 응해줬다. 무명의 가수를 전속모델로 계약해준 김애자 대표가 그들은 고마웠고, 그 고마움을 저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서 왔다. 의류와 패션 시장에 대한 통찰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상품은 소비자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순풍은 멈칫거리기 시작했으며 매출이 주춤거렸다. 브랜드 도입에 급급해서 체결한 브랜드 라인센스 계약도 발목을 잡았다. 초기엔 미미한 금액이었지만 매출 볼륨이 커지면서 라이센스 로열티(브랜드 사용료)가 부담으로 작용했다. 오리지널 라이센서와 서브라이센서(국내 브랜드 재판매회사)의 이중 부담으로 결코 적지 않았다. 런칭 이후 첫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누구나 이런 위기의 순간은 오기 마련이다. 이 무렵 중소 패션기업들은 자본금 10억원 미만으로 자금의 여유가 많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을 시작했고 그들의 브랜드 비즈니스는 패션 내수 시장의 호황에 힘입어 생각보다 쉽게 시장에 진입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들 중 대다수는 안타깝게도 도약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스러졌다. 바람은 항상 순풍일 수 없다. 어느 순간 조정기는 오기 마련이다. 단계별로 전략도 달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기업들이 첫 단계에 그들의 역량을 다 쏟아 붓고, 조정기를 무시하고 다음 단계에 이르러서도 이전의 1단계 전략을 고수하려는 모습을 종종 본다. 이미 투자력의 한계에 봉착했는데도 말이다. 이는 하청업체에 대한 결제, 즉 어음기한이 도래하면서 심각한 경영난에 빠지게 되는데 ‘UCLA’도 그 전철을 고스란히 밟았고 급기야 부도 처리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런칭 5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그렇게 ‘UCLA’는 메이저 브랜드 시장에서 사라졌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의 불행한 말로를 보는 마음처럼 애잔스러웠다. 전속모델이었던 조성모는 그 이후로도 연일 상종가를 울리며 최고의 가수가 되었는데.....
지혜가 필요
다가올 일이 알지못한다 하여 준비하지 못하고
심지어 알고서도 준비하지 못하면 이미 파국이 예정된 수순입니다...
이러한 예는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음직한 일화들이라 봅니다.
순간적인 현혹은 가능할지언정, 역시 제품질이나 특성이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 그 결과는 자명한 일이라 봐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