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 재테크 잡지에 연재했던 내용인데 그냥 두기 아까워 여기에 공유합니다. 배 나온 중년 남성들을 위한 팁들이 아주 쪼오금 들어 있습니다.
옷 잘입는 것도 재테크다.
중년 남성의 옷 잘 입기, Well-made
예전 TV 개그 프로그램 중 ‘렛잇비’라는 코너가 있다. 젊은층은 고단한 직장생활의 애환에 공감하며 웃고, 중년의 아저씨들은 자신은 결코 그 코너에 나오는 부장이 아니라고 믿으며 웃을 것이다. 이 개그 코너의 웃음 포인트는 자신이 생각하는 직장생활과 현실이 너무나 다르다는 데 있다. 현실에서도 이 개그 프로그램과 같이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것은 틀린 것으로 여기거나 자신이 모르는 분야에 대한 아집과 선입견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다만 현실에서는 웃음으로 승화시키지 못할 뿐이다.
패션업계에서 일하는 나는 이와 비슷한 선입견을 많이 경험한다. “패션에 종사하는 사람이 스타일이 왜 그래?” 혹은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이 뭐야?” “ooo 디자이너 패션쇼에 나오는 옷은 무엇을 뜻하는 거야?”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물론 선입견이다. 패션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모두 얼리 어답터가 될 수 없을 뿐더러 스타일리스트처럼 ‘금나와라 뚝딱’하면, 완벽한 스타일의 연예인을 나오게 하는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일반인들에게 패션에 대한 이런 뿌리깊은 선입견이 있는 것은 왜일까? 늘씬한 모델의 화려한 워킹과 유명 연예인들이 입고 나온 패션 브랜드. 패션하면 대충 이런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게 되는데 사실 이건 신기루에 가깝다. 이들과 내가 다르듯, 화려한 이미지의 패션과 현실의 패션은 분명히 다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패션 디자이너들이 옷을 잘 입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내가 보아온 디자이너들 중 일반적인 의미의 옷을 잘 입는 사람은 단언컨데 많지 않다. 자신만의 개성을 살린 독특한 옷을 입은 디자이너들은 수없이 많지만 잘 차려입은, well-made한 디자이너는 거의 없다.
패션도 재테크다
주제로 돌아가서 중년 남성의 옷 잘 입기에 대해 생각해보자. 왜 중년 남성의 옷 잘 입는 방법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우리나라에서 중년 남성의 역할이 그 해답이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중년 남성은 슈퍼맨의 역할을 떠맡는다. 자신 보다 남을 위한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 재테크에서도 마찬가지다. 주식, 건강, 노후 등 많은 분야의 재테크에 관심을 보이면서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한 투자는 소홀히 한다.
최근 젊은층 사이에서는 성형과 미용, 패션 등 자신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고 있다. 특히 이와 관련된 시장의 성장 속도는 남성이 여성에 비해 몇 배나 높다. 이처럼 2030세대들은 벌써부터 미용과 패션을 나에게 투자하는, 재테크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중년의 남성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아저씨 패션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폴로 셔츠에 코튼 점퍼, 알록달록한 셔츠에 검정색 재킷, 전형적인 아저씨 스타일이다. 물론 같은 옷을 입어도 다르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있겠지만 이 스타일을 멋지게 소화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제 패션도 재테크라는 개념을 가지고 중년 남성 옷 잘 입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당신도 멋진 블랙슈트에 화이트 셔츠와 레드 타이를 하고 블루 사각 스퀘어 백팩과 브라운 컬러의 스니커즈를 신고 자신을 뽐낼 수 있다.
중년 남성의 옷 잘 입기 프로젝트
우선 옷을 잘 입는다는 개념부터 정리하자. 옷을 잘 입는다는 의미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저마다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옷을 잘 입는다는 평가를 일반화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여기서 옷을 잘 입는다는 개념은 누구나 인정하는, well-made의 개념이다. 스웨그나 놈코어 등을 잠시 접어두고 중년 남성들이 가장 일반적으로 선호하는, 혹은 그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착장에 대해 얘기하려고 한다. 글의 순서는 가장 기본인 수트를 시작으로 비즈니스 캐주얼과 오프타임 캐주얼, 이너웨어, 슈즈, 액세서리까지 품목별로 정리할 계획이다. (글 싣는 순서 참조)
본격적인 프로젝트에 앞서 이번 호에는 몸 풀기로, 버려야 할 패션에 대한 선입견 몇 가지를 정리한다. 이제 화려한 캣워크 위의 모델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자신의 옷장에 있는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스타일리스트가 아니기 때문에 훌륭한 착장법 보다는 가지고 있는 옷을 알맞게 리폼하거나 어떤 옷을 어떻게 구입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따라서 브랜드의 PPL이 난무할 수도 있으니 양해 부탁한다. )
우선 자신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옷 잘 입는 사람은 자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일 경우가 많다. 그들은 자신의 체형과 성격을 비롯해 자신이 속한 직업군의 특징 및 스타일 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말이다. 영업맨과 내근직의 패션 스타일이 같을 수 없고 와일드한 성격과 내성적인 사람의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는 착장법을 찾아야 한다. 사실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체형을 파악하는 일이다. 키, 몸무게, 다리 및 팔 길이 등 옷 입을 때 고려해야 하는 것들 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실체와 다른 취향을 선택하는 우를 범한다. 영업맨이 내근직 스타일의 옷을 입거나 키가 큰 사람이 짧은 수트를 착용하는 등 워스트 드레서가 의외로 많다. 특히 중년 남성들 사이에서는 흔히 기지 바지라 불리는 오래된 양복 바지를 나온 배 위에 얹혀 놓고 가끔 무릎까지 밑단을 걷어올리는, 끔찍한 현실이 종종 목격되곤 한다.
워너비와 현실은 분명 다르다. 자신의 체형을 옳고 그름의 기준에 가두지 말고, ‘나’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이를 받아들여야 ‘나’에게 맞는 옷을 입을 수 있다. 이건 잘잘못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선택해야 할 스타일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패션에 대한 게으름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게으름으로 인한 패션 테러리스트의 오명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중년 남성들의 아저씨 스타일이 보편화된 배경에는 와이프들이 있다. 어릴 적부터 배워 온 ‘사내놈이 ~~’라는 보편적 인식 때문에 직접 옷을 사 입는 경우가 극히 드물고 아내가 골라준 옷을 입는 ‘남자’ 다운 남자가 아직도 무수히 많다. 때문에 거의 비슷한 스타일에, 비슷한 컬러, 비슷한 브랜드(세일할 때 극히 심해짐)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자신에게 투자하려고 마음먹었다면 이제 직접 골라야 한다. 그러려면 많이 보고 많이 돌아다녀야 한다. 쇼핑하는 와이프를 탓하지 말고 같이 쇼핑을 해야 멋진 스타일이 연출할 수 있다.
마직막으로 패션 브랜드에 대한 편견을 버리는 일이다. 이건 패션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쉽게 얘기할 수 없는 주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브랜드의 가치가 상품의 가격과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다. 비싼 것이 좋은 것이고(가치가 있는), 저렴한 것이 나쁘다는 인식은 잘못됐다. 어떤 사람은 그 흔한 ‘루이비똥’ 백을 들기 위해 몇 달치 월급을 사용하지만 어떤 사람은 국내산 ‘쿠론’ 백을 사랑한다. 또 어떤 남성은 ‘알마니’나 ‘제냐’, ‘다반’ 등 명품 수트의 가치를 인정하지만, 다른 이는 ‘지이크’에서 같은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일본의 ‘유니클로’와 콜래보레이션했던 유명 디자이너가 표현한 ‘Less Expensive’를 되새겨보면 가치와 가격의 의미 분리, 충분히 가능하다.
이밖에도 패션에 대한 많은 편견이 존재하지만 생략키로 하고, 글을 정리하며 위에서 언급한 개그 프로그램 ‘렛잇비’에 출연하는 4명의 연기자들이 입고 있는 옷들을 유심히 살펴보자. 직장인들의 일반적인 착장법을 연출한 것이겠지만 요즘에는 공무원은 물론이고 백화점 직원들도 그렇게 입지 않는다. 현실을 고려한 착장법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만약 부장이 스트레이트 핏의 청바지에 옅은 핑크의 카디건을, 대리는 스프라이트 셔츠에 체크 슈트와 슬립온 슈즈를, 신입사원은 스웨그 스타일의 라운드 티셔츠에 스키니핏의 면팬츠, 브라운 워커를 입혀보면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