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HChoice의 Market Story 2
고무공장 큰애기와 화승
“신고산이 우루루 함흥차 가는 소리에 고무공장 큰애기 밤봇짐만 싸누나~~”
신고산타령이다. 일제시대 함흥 어딘가에도 고무공장이 있었나 보다. 가난한 시골 생활을 벗어나고픈 누이의 갈망은 고무공장의 고단한 삶으로는 채우지 못했는지 야밤에 봇짐을 싸고 야반도주를 떠올리는 애환을 그려본다. 그 고무공장이 정확히 무슨 공장인지는 알 길 없지만 고무신이 우리 생활에 들어온 시기가 그 때쯤이었으니 아마도 고무신을 찍어내는 공장이었을 것 같다.
비단과 가죽으로 갖바치가 기운 신발은 지체 높은 양반들의 전유물이었던 시절 짚세기에 연연해야 했던 서민들에게 고무신은 그야말로 혁명이었다. 100년도 채 되지 않은 이야기다. 해방이 되고 일제 수탈의 흔적을 지우지 못한 채 맞은 한국전쟁은 대한민국을 완벽하게 폐허로 만들었다. 이 무렵인 1953년에 창업한 회사가 바로 화승의 전신인 동양고무공업주식회사이다. ‘기차표’ 고무신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잇템’이었다. 체면이라도 차려야 하는 분들은 하얀 고무신, 아이들이나 서민들은 검정 고무신. 불과 40~50년 전의 일이다.
동양고무는 ‘나이키’ 운동화 OEM 생산으로 성장하면서 1980년 사명도 화승으로 변경하고 1986년에는 자체 브랜드인 ‘르카프’를 출시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던 화승이 얼마 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프로스펙스’의 국제상사(현 LS네트웍스)의 역사도 다르지 않다.
20여 년 전 필자는 두 브랜드 모두를 도와 일한 적이 있었다. 그런 만큼 애착이 있었고, 더군다나 스포츠 시장에서의 토종 브랜드를 응원하는 마음은 더욱 그러했음에도 불구하고 추락하는 그들을 지켜보는 일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사실 그때도 끊임없이 위험 신고는 있었다. 그들이 브랜드를 운영하고, 상품을 기획하는 과정을 보면 그저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당시 양쪽 모두 기획 분야에 있는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는 딱 2가지였다. 하나는 ‘지난 시즌에 우리 제품 중에 잘 팔린 것이 무엇이며, 이를 계속해서 어떤 방식으로 다음 시즌에 전개할 것인가’와 다른 하나는 ‘‘나이키’가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제품이 무엇이며, 그것을 우리 제품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였다. 명목상으로는 대단히 중요한 기획 포인트일 수 있었지만 그 실행 방식에는 대단히 실망했다. 그들은 그들이 잘 팔았던 제품이 근본적인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당시 매출의 상당 부분을 농구화가 주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이유를 물었고, 그들 모두는 한결 같이 디자인과 기능성이 뛰어났고, 품질도 아주 좋은데다가 ‘나이키’ 조던 농구화시리즈의 유행 때문이라고 답을 했다. 기억하는가? 90년대 중후반 패션의 주된 키워드는 힙합이었다는 사실을...
당시 힙합 패션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신발이 농구화였고, 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힙합패션이 농구화의 매출을 견인했음에도 그들은 그 문제를 간과한 것이다. 같은 의미로 이후에 유행한 ‘뉴발란스’도 설명할 수 있었다. ‘뉴발란스’의 기본 스타일은 런닝화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뜀뛰기 운동하려고 ‘뉴발란스’ 운동화를 사기보다 학생들이 학생화 개념으로 대부분이 구매했다는 사실이다. 결국 당시 기획의 방향은 힙합에 어울리는 신발, 학생화로 어울리는 신발에 포커스를 맞춰야 했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농구화와 런닝화 만드는 일에 충실했을 뿐이었다.
‘나이키’의 다음 시즌 신상품에 대한 분석은 어떻게 하느냐는 물음에는 더욱 가관이었다. 신상품의 디자인적 요소에 대한 디테일한 분석인 면(面) 분할 방식, 컬러 variation, 부착 장식물의 적용 방식 등을 이야기하면서 ‘나이키’ 운동화 제조공장에서 생산 중인 제품의 정보를 빼내온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만 해도 ‘나이키’ 본사에는 직간접적으로 신상품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가 2천여명이 넘었고, 그들은 디자인한 제품을 선정하기 위하여 그들의 Philosophy를 제품에 녹여내기 위하여 엄청난 심혈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필자는 당시 ‘프로스펙스’와 ‘르카프’ 담당자뿐만 아니라 임원에게도 그런 ‘나이키’ 제품 하나하나에 담겨진 철학과 그 철학을 제품에 표현해 내는 방식을 입체적으로 ‘프로스펙스’와 ‘르카프’의 제품에 담아야 한다고 설파했지만 그들은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끝내 듣지 않았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스포츠시장의 시장점유율 1위는 ‘프로스펙스’, 2위 ‘르카프’, 3위가 ‘나이키’였다. 이후 ‘프로스펙스’와 ‘르카프’는 점유율이 떨어지면서 불과 5년도 채 되지 않은 1990년대 중반에는 ‘나이키’가 선두로 올라서고 이후에도 그 격차는 지속적으로 벌어지게 된다. 시장점유율이 낮아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부도, 법정관리, 매각 등 기업으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들이 벌어졌고, 또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No Field, No Court, No Track and Go Street’
‘Get out of Nike’s Avatar’
그들에게 전한 나의 메시지였다.
브랜드 비즈니스는 제조업의 개념을 넘어서는 사업이다. 제품을 팔려는 노력보다 상위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브랜드의 가치를 팔아야 하고, 제품 하나하나에 철학을 심어서 소비자에게 어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화승의 소식은 오늘날 우리를 씁쓸하게 한다.
그저 그들은 제조 마인드를 가진 공장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