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HChoice의 Market Story1
누에고치와 아웃도어
내 고향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대다수의 고향사람들은 다른 돈벌이는 생각하지도,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일거리가 없는 까닭에 그저 농사짓는 일을 천직으로 삼으며 살아가고 있다. 산골이라 벼농사만으로는 생계를 충족시키지 못해 구조적인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다보니 소위 ‘농가소득 증대’를 위한 부업들이 시대의 흐름을 따라 생겨나고 또 사라지기도 했다. 담배, 과수 농사 등이 그랬다.
어릴 적 봄이면 집집마다 온 방안에 사각사각 소리가 들리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만 누에가 여린 뽕잎을 갉아 먹는 소리를 듣는 일은 정말 흔했다. 누에가 다섯 밤(5령)을 자고 나면 고치를 만들게 되고, 그 누에고치를 양잠조합에 가져다 등급을 받아 팔면 시골에서는 춘궁기에 제법 쏠쏠한 수입이 되었다. 그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 만든 것이 우리가 아는 바로 그 비단(Silk)이다. 하지만 그들은 비단옷 한번 제대로 입어 보지 못하고 그냥 누에를 짓고 가욋벌이를 할 뿐이다.
가가호호, 흔하디흔한 누에를 치던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생산성, 즉 투입되는 노동력 대비 얻어지는 소득이 적고, 그보다 더 많은 소득을 보장해주는 작물 재배 등을 찾아 떠나갔기 때문이다. 경제학의 ‘경’자도 모르고, 마케팅의 ‘마’자도 모르는 촌로들조차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 자기 삶을 개척하는 것이다. 시골의 촌로도 그럴진대 우리 패션업계는 어떠한가?
얼마 전까지 아웃도어가 패션 시장의 모든 트렌드를 주도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업체라면 아웃도어 브랜드 하나쯤은 운영하고 있어야만 할 정도다. 아웃도어 시장은 분명히 Cash cow다. 그러나 Cash cow는 한계가 있음도 분명하다. 많은 전문가들은 아웃도어 시장이 지금처럼 커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또 시장 규모가 유지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으로 이야기하곤 했다. 그런데 여전히 많은 기업들이 그 판에 뛰어들었고, 때로는 인위적으로 그 판을 키우기도 했다. 좋은 말로 ‘시장의 다변화’, ‘시장의 다양화’이겠지만 궁극적으로 시장은 엉망이 되어간다. 포화에 달할 즈음 부랴부랴 브랜드를 접고, 내부적으로도 구조조정을 하느라 난리법석을 떨고 있다.
불과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국내에 아웃도어 브랜드는 ‘코오롱스포츠’가 거의 유일했다. 지금은 브랜드만 해도 몇 개나 있는지 가늠할 수도 없을 만큼 많아졌다.
시장 규모가 커지다보니 아웃도어와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넘쳐난다. 국내 업체가 해외 아웃도어 브랜드를 유치하기 위해 엄청난 규모의 매출 목표를 제안했을 때 해외 업체 임원은 South Korea에는 해발 2,000미터 이상의 산도 하나 없는 조그만 나라에서 가당치 않은 수치라면서 신뢰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국내 업체는 본사 임원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주말에 청계산 입구 등 서울 근교 몇몇 곳을 보여줬더니 바로 승낙하고,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나라만큼 산행단체가 많은 나라가 있을까? 산행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서너개 단체에 가입해서 산을 찾고, 단체가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까지 야외(Outdoor) 나들이 인구는 엄청나다. 둘레길, 올레길, 심지어 천변길을 걸을 때도 아웃도어 차림은 필수다.
이에 더하여 여행 옷차림도 아웃도어가 대세다. 관광지에서 깃발을 앞세우고 조용히 따르는 일행은 일본인 단체, 깃발을 앞세우고 시끄럽게 지나가는 일행은 중국 여행객, 반면에 아웃도어 옷차림이라면 무조건 한국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들릴 정도다. 그래서 해외 여행갈 때 아웃도어 복장을 금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오기도 했다.
아웃도어 시장이 확대되면서 한 때 ‘코오롱스포츠’ 출신이 인기를 끌었다. ‘코오롱스포츠’는 아웃도어 사관학교로 불리면서 신생업체들이 너도 나도 데려다가 아웃도어 브랜드를 맡겼다. 급기야 ‘코오롱스포츠’ 출신도 한계에 다다르자 아웃도어와 관계없이 코오롱 출신이라면 무조건 영입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국내 상황이 이렇다보니 아웃도어 브랜드를 런칭하고 유통을 늘리고, 광고를 해대고, 정신없이 지난 20년을 보냈다. ‘갓쓰고 장에 가니 투가리 쓰고 따라 나선다’는 말이 있듯이 그렇게 시장이 성장하고 포화되고 정체되고 새로운 판이 짜여지고 있다.
서두에 언급한 촌부가 누에를 짓는 일과 아웃도어 브랜드 운영이 오버랩된다. 쏠쏠하다는 말에 솔깃해서 뛰어든 시장인데 이제는 나눠 먹을 것이 작아졌다.
촌부는 더 이상 누에를 짓지 않는다. 그렇다고 누에 농사가 사라지지 않았다. 전라도 어느 지역은 누에와 뽕으로 지역 모두가 특화해서 또 다른 쏠쏠함을 맛보고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아웃도어 시장이 한계에 달했다고 해서 아웃도어 시장이 사라지지 않는다.
핵심은 이런 현실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시장 예측이다. 그런데 왜 아무도 이런 현상이 초래됐는지, 이런 현상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는 고민하지 않는 듯 보인다. 적어도 마케팅을 하는 사람이라면 시장의 가치 뿐만 아니라 한계도 반드시 분석해야 한다. 한계점 이후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도 제시해야 한다.
그들은 지금까지 옷과 관련 제품들을 팔았다. 옷을 파는 기업은 패션기업이 아니다. 그냥 섬유제품 제조 또는 판매 기업일 뿐이다. 그들이 가치를 팔고, 그 가치의 한계를 알고 대응하는 전략으로 사업을 전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