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HChoice의 Market Story 5
부채표 활명수와 ‘디망쉬’
‘Dimanche’라는 브랜드가 있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최근에는 유아동복, 침장류, 세제류 등을 판매하는 회사가 사용하는 브랜드로 나타난다. 잊고 있던 오랜 친구를 되찾은 기분으로 반가운 마음에 커텐을 고르고, 먼 훗날 태어날 손주에게 입힐 유아동복을 품평한다. 구매하지도 않을 ‘디망쉬’ 상품을 단지 ‘디망쉬’라는 이름 때문에....
한때는 제화업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시장에서 한 몫 하던 브랜드였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까? 정녕 우리나라에서의 브랜드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인가? 이런저런 상념에 문득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상표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샘표’라고 한다. 1949년 상표법이 시행된 이래 샘표식품주식회사가 1954년 5월 10일 등록하여 현재까지 유지, 사용되고 있으니 며칠만 지나면 만 65년이 되는 최장수 브랜드인 것이다. 물론 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는 ‘활명수’로 유명한 동화약품의 ‘부채표’가 1910년 특허국에 상표 등록을 했다 하니 올해로 109년이 되는 최고령 상표가 아닌가 싶다. ‘이명래고약’도 생각난다. 우리나라에도 역사성이 있고 꽤 괜찮은 브랜드가 제법 있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한때 열정을 쏟았던 ‘디망쉬’ 브랜드의 멸절을 생각하니 답답한 마음뿐이다.
‘디망쉬’ 브랜드는 1990년 무렵 제화시장에 나타났다.
그 때의 제화시장은 두 가지 특징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BIG 3라 일컫는 금강, 에스콰이아, 엘칸토 3사가 과점적 형태의 시장을 굳건하게 형성하고 있고 군소 브랜드가 niche market을 공략하는 추세였다. 제화3사는 항상 부르는 순서도 금강, 에스콰이아, 엘칸토 순으로 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있었으며 패션산업 전체를 통틀어서도 단연 leading company이었다. 패션 비즈니스를 추구하는 삼성(제일모직-SS패션), LG(반도패션), 코오롱 등의 대기업조차 구두시장 접근이 힘들 만큼 그들의 위상은 대단했다. 제화시장의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정통 드레스 슈즈 시장과 ‘랜드로바’, ‘영에이지’ 브랜드로 대표되는 캐주얼슈즈 시장의 뚜렷한 양분체제였다. 물론 패션성이 가미되고 맞춤형 개념의 ‘미소페’, ‘조이’, ‘탠디’ 등의 살롱화 브랜드가 제화 3사의 기성화 개념에 맞불을 놓으면서 영역을 확대하려는 추세가 있기는 했다. 바로 그런 만만치 않은 시장에 ‘Dimanche’라는 브랜드가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당시 ‘Dimanche’의 런칭은 제화 시장에 파격이었고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위에서 언급한 시장의 특성을 모조리 파괴한 브랜드였기 때문이다. 대기업인 코오롱상사가 제화시장에 뛰어 들었고 어쩌면 지구상에 있지도 않았을, 아주 이질적인 concept을 제시했다.
그들이 내세웠던 Brand concept은 ‘Dressy casual’였다. ‘Dimanche’는 ‘일요일’, ‘안식일’, ‘공휴일’이라는 의미의 프랑스 말에서 알 수 있듯이 unofficial code를 지향하는 컨셉이다. 그렇다고 해서 ‘랜드로버’, ‘영에이지’ 류의 완전 casual 성향도 아니었고 정통 신사, 숙녀화를 지향하는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Dressy’한 느낌의 ‘casual’이다.
‘Dress like Casual’, ‘Casual like Dress’’It’s Dressy casual’
‘디망쉬’ 브랜드를 준비하는 이들은 이미 이 무렵에 영역의 파괴와 시장의 융복합(Hybrid, Convergency, Integration) 개념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기존 제화 3사가 추구하지 못하고 있는 잠재적 시장을 찾아낸 것이다. Casual shoes가 추구하는 편안한 기능성은 ‘멋스러움’에 한계가 있고 Dress shoes는 고전적인 형태만을 지향하다보니 ‘uncomfortable shoes’라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바로 그 점에서 시장의 새로운 needs를 찾아냈는데 완벽한 comfort는 아니지만 적당히 comfort하고, 완전히 정장 style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이해될 수 있는 Formal함도 간직하는 convergence concept에 방점을 찍고 ‘Dressy Casual’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낸 것이다.
‘디망쉬’는 Product concept도 분명히 달리했다. 그들은 브랜드 컨셉을 실현하기 위하여 제품에 확실한 차별화 전략을 사용하였다. 첫 번째는 ‘color의 차별화’다. 기존 매장에 진열되어 있는 상품은 Black and Brown 계열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여기에 ‘디망쉬’는 과감하게 파스텔 색상을 기획하게 된다. 파스텔 색상은 화려함속에서도 은은함을 갖기 때문에 충분히 시장성을 예측할 수 있었으나 해당 색상을 일반 피혁으로는 표현해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선택한 피혁이 누벅(Nubuck)이다. 누벅은 부드러운 Feeling과 더불어 착화감을 편하게 해주고 색상의 발현도도 뛰어나다. 물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부(否)의 결과보다 정(正)의 효과가 많았기 때문에 확실한 차별화의 성공적인 선택이었다. Style에 있어서도 정통 캐주얼이 아니기 때문에 결코 투박하거나 과감한 디자인은 선택하지 않았다. 이후에 엘칸토에서 런칭한 ‘Mook’와 비교하면 그 구분이 더욱 명확하다. ‘무크’는 색상에서도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대중적인 Black만을 선택해서 ‘Black Coordination’이라는 컨셉으로 전개했고, 더불어 과감할 정도의 Sharp한 Toe 스타일을 강조했다. 1990년대 중반 ‘무크’가 시장에 나왔을 때 실제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으나 필자는 안타깝게도 우려감을 갖고 있었다. Concept이 강하다는 것은 Character가 강하다는 것이고 이는 단기간에 시장 진입은 성공할 수 있으나 오래가지 못하는 단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하여 ‘디망쉬’는 확실한 차별성에도 불구하고 Target Market을 폭넓게 정의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브랜드의 영속성에서 상당히 좋은 브랜드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너무 쉽게, 너무 빨리 ‘디망쉬’는 망가져버렸다. 그렇게 잘 준비되고 기획된 브랜드가 10년을 채 넘기지도 못하고 접어버리게 된 것이다. 문제는 사람이다. ‘부채표’ 활명수는 그 긴 시간 동안 구성원들이 숱하게 바뀌고 변해도 그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근본 목적에 대한 충실함에 변화가 없었던 까닭에 오래 도록 갈 수 있었지만 ‘디망쉬’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디망쉬’가 추구하는 브랜드의 목적은 단순히 발에 신는 신발이 아니고 ‘Dressy Casual shoes’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당자가 바뀌니 ‘적당히’ 예쁜 신발은 사라지면서 투박한 신발이 주류를 이루고, ‘적당하게’ 화려했던 색상은 종적을 감추고 그 자리엔 숯검댕이하고 밤갈색만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게 된 것이다. Dress도 아니고 Casual도 아니지만 Dress이기도 하고 Casual이기도 한 브랜드 컨셉은 그냥 Dress이고 그냥 Casual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람이 먼저다’
어느 정치인의 말이 생각난다.
브랜드를 제대로 이끌어 가는 일은 AI가 결코 할 수 없다.
정말 제대로 된 ‘사람’이 먼저다......
'사람이 먼저!'라는 컨셉으로 기업 문화를 리드해 갔더라면 더 오래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을, 창업의 초심이 오래 지속되지 못한 것 같으네요.
역시 위정자든, 사주이든, 모든 역사는 '사람'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