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선주의 感) #1 - 2차원과 3차원의 경계

instagram facebook youtube
OPEN WRITE
▶ 모바일 홈 화면에 바로가기 추가하기

(감선주의 感) #1 - 2차원과 3차원의 경계

케이스토리 0 2019.07.02

 

매 시즌 디자인을 준비하며 새로운 테마를 찾아 헤매는 작업은 때론 신나는 일이지만 때론 고역스런 작업이기도 하다. 무언가에 감동을 받는 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무심코 앉은 카페의 잡지에서 운이 좋게 영감을 받을 때도 있지만, 여행을 떠나고, 멋진 전시를 돌아다니고, 디자인 도서관에서 무수한 책들을 찾아보아도 영감은 커녕 요만큼의 감동조차 얻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감동받는 그 순간을 맞이하더라도 그 감동을 시각적 언어로 풀기 위해 나에게 감동을 주는 것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찾고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감동을 주는 그 포인트가 뭘까에 대해 깊숙이 생각해보는 시간들은 감동의 깊이를 풍성하게 만든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것들을 경험할 수도 있는데 특히 보는 시각을 달리해 새로운 무엇인가를 느낄 때 또 다른 삶의 가치를 맛볼 수 있다.

 

최근 기억에 남는 감동적인 순간은 뮤지엄 산에서 보았던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전시였다. 퀘이커교를 믿는 제임스 터렐은 작품의 대부분이 빛을 이용한 것으로 퀘이커교의 교리 중 하나인 내면의 빛을 감상자에게 전달한다. 제임스 터렐의 작품은 작품을 봤다는 느낌보다는 체험을 했다고 표현해야 할 것만 같다. 감상자로 하여금 작품을 체험하면서 명상에 잠기도록 유도한다. 뮤지엄 산에서는 제임스 터렐의 3가지 작품이 전시 중인데 그 중 간츠펠트(Ganzfelds)라는 작품이 인상에 남는다. 간츠펠트는 독일어로 완전한 영역라는 뜻으로 시각 자극이 박탈되었을 대 어떤 환각을 경험하는 현상에서 유래된 심리학 용어라고 한다.

 

 

간츠펠트작품의 첫 대면은 3차원의 공간이 아니라 2차원의 평면이었다. 의자에 앉아 설명자의 안내에 따라 사각 프레임의 오묘한 색변화를 감상했다. 새하얀 벽면에서 움직이는 사각 프레임의 변화만으로도 빛의 신비로움을 느끼고 있을 즈음 작품의 설명자는 2차원의 평면이라고 생각했던 빛의 공간 속으로 쏙 들어갔다. 2차원의 평면이 3차원의 공간으로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뭐지? 평면이 아니라 공간이었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는 찰나 설명자가 감상자들에게 작품 공간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흥미를 느끼며 작품의 구멍 속으로 들어간 순간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3차원 공간으로의 확장이 아니라 무한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서 내가 발을 딛고 있는 곳이 바닥인가라는 의심하고, 어디가 천정이고 벽인지 인지하기 어렵고, 어디가 끝인지도 파악하기 힘든 공간에서 내 자신을 마주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나는 지금까지 모든 것을 겉모습만으로 파악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지식의 얄팍함을 인지하며 또 다른 깨달음을 얻게 됐다.

 

나는 패션 디자이너다. 창작자이기도 하지만 패션을 연구하는 연구자이며 또 패션을 가르치는 교육자이기도 하다. 다양한 역할을 한 번에 소화하려니 버겁고 힘든 순간이 매번 다가온다. 하지만 이 일들을 모두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는 목표의 지점, 또는 한계의 지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이를 극복하며 인생의 묘미를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 이 것은 여기까지야...”라고 생각한 지점에 도달한 순간 2차원의 평면은 항상 폭넓은 3차원의 공간으로 다가온다. 버겁고 힘든 모든 경험들도 어떤 고지에 올라서 돌아보면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만들고, 그 재미난 추억도 결국 2차원적인 평면의 공간으로 바뀌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다음의 체험이 궁금하여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을 땐 나의 미래가 무한의 공간으로 변화는 짜릿한 경험을 반복하며 또 다른 미래의 목표지점을 찾아 무한의 공간을 헤매게 된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코메디이다.(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라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처럼 어디가 끝인지 모르는 삶의 순간을 체험할 때는 힘들고 버겁지만 끝에 도달하는 그 지점에서 과거를 돌아보면 인생이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짜릿한 경험, 이것이 인생의 묘미가 아닌가 생각한다.



감선주 디자이너는 경희대에서 의상학을 전공하고 영국 센트럴세인트마틴에서 공부를 더하고 2010년 자신의 브랜드 ‘TheKam’을 런칭했습니다.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의 가면 디자이너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에는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고 합니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