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환 에세이) 언젠가는 가야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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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환 에세이) 언젠가는 가야할 길

신발장수 0 2019.07.22

  

신발해서 우째 살라고 10- 가정사로 떠밀린 사업의 시작

 

30살이 되던 1992년 말 SK를 퇴사하고 사업의 길로 들어섰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가끔 요즘말로 금수저 출신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특별히 설명을 하기보다는 그저 가볍게 웃음으로 넘기곤 했는데 사업을 한 이후로 크게 부침이 없이 순탄하게 지나왔으니 그리 보일 법도 하고 일일이 설명하자면 사업 전 10여 년간의 가족사를 다 밝혀야 하는 것이라 그리 내키는 것이 아니었다. 이 글들을 연재하면서 SK를 그만두고 사업으로 전향한 과정과 이유를 설명해야 스토리가 연결되니 이번에는 하는 수없이 오랜 그날들을 정리해보았다.

 

한국의 근현대사 만큼 드라마틱하고 역동적인 역사가 있을까?

 

 

우리 시대 대부분의 아버지가 그러했듯 나의 아버지도 오롯이 격동의 역사가 안긴 상처와 고난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철들 무렵 아들이 없던 큰집에 양자로 가서 종손의 역할을 부여받았고 6.25라는 이데올로기 전장에서 두 아버지를 잃고 15살에 두 어머니와 동생들을 줄줄이 거둬야 하는 가장이 되었다. 가질 수 있는 배움의 기회와 재정적 지원이 전무하다시피한 상황에서도 가장으로서, 형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역할에 누구보다 헌신적이었다.

 

다만 경제적인 성취는 그리 녹록치 않았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될 때부터 사업을 시작하셨지만 워낙 가진 자본 없이 시작한 터라 안정적으로 사업을 영위하기가 어려웠었다. 그럼에도 내색하지 않는 성품이라 내 형제들은 그저 그런대로 생활이 꾸려지고 있는 줄만 알았고 원하던 대학에 진학하는데 경제적인 부담을 걱정해 보지는 않았다.

 

장남이라 동생들보다는 조금 일찍 철이 든 탓에 어렴풋이 몇 차례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음을 느낀 적은 있었지만 그리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아버지는 신발에 쓰이는 슈레이스, 재봉사, 원단 등의 원사를 가공하여 납품하는 업을 하였는데 당시 신발산업의 부침에 따라 사업이 항상 불안한 상황이었다.

 

1988년도는 내가 SK에 입사를 했고 막내 동생이 고려대학교에 입학한 해였다. 동생의 입학식에 맞춰 당시 결혼을 약속한 아내를 부모님께 정식으로 소개하려고 했다. 그런 계획을 말씀드리고 마중을 나가겠다고 부산 본가에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받은 어머니가 가는 한숨과 함께 이번에 못 올라갈 것 같다. 사실 집에 돈이 한 푼이 없다라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현실에 마주친 순간이었다. 교통비를 부쳐서 서울로 모셨고 입학식, 상견례는 무사히 넘겼지만 그때부터 집안의 경제문제는 아버지만의 부담이 아니었다. 신발 사업부를 택한 이유 중 현실적인 경제적 지원이 가장 중요한 하나가 되었다.

 

그 이후 결혼, 신혼집 마련 등은 몇 년간 직장생활로 모았던 자금과 회사로부터의 대출로 충당하였다. 곤궁했지만 어렵사리 일에 파묻혀 지나던 중에 1992년도 감당하기 힘든 큰 문제가 발생하였다. 당시 아버지는 코오롱에서 원사를 납품받아 도매로 판매하던 중 가장 큰 거래처의 부도로 연쇄적으로 코오롱에 결재해야 할 물품 대금을 지급할 수 없는 지불불능 상태가 된 것이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2억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거기다 연체이자와 회수되지 못한 원사를 감은 기구들의 비용까지 합쳐서 부도금액은 3억원 가까이 되었다. 당시 내 월급이 100만원쯤이었던가..? 부산 부암동에 있던 내가 살던 조그만 아파트는 시가가 약 7,000만원이었는데 주택은행 대출 2,000만원, 신한은행 대출 3,000만원, 그리고 회사 대여금 1,500만원 그 위에 코오롱의 담보로 약 1억원이 설정되어 있었다. 부모님과 할머니, 여동생 둘은 이미 부산 가야동의 20평 전세집으로 옮긴 후였다.

 

더 문제는 시골의 전답이 2억원 정도 담보가 되어있었는데 그것은 작은아버지들의 소유였다. 얼마 뒤 코오롱으로부터 부도대금 회수를 위해 담보 제공된 아파트와 시골 전답에 대해 경매에 넘기겠다는 연락이 왔다. 내가 가지고 있던 쌈짓돈이라 해봐야 달랑 4~5백만원 정도였다.

 

신발산업은 91년도를 정점으로 급격히 무너지고 있었다. 대량 물량의 미주 바이어들은 어느새 새로운 생산 기지가 된 중국으로 주문량을 빠르게 옮기고 있었고 유럽도 마찬가지였다. 1억불을 연간 수출하던 SK신발사업부도 점점 규모가 축소되고 있었다. 유일하게 내가 맡고 있던 일본지역만 성장하고 있었고 거래처의 구성을 소규모 수입상에서 대형 브랜드와 도매상으로 변화시키면서 내용적으로도 더욱 건전해지고 있었다. 일본지사에서도 신발 사업을 더 확대시키고자 했고 당연히 도쿄이든 오사카이든 현지 지사로 발령이 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나에게는 유럽의 비엔나지사나 막 붐이 시작되던 중남미의 관문인 파나마 지사를 선택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어안이 벙벙한 것이었다. 일본에 특화되어 성과도 좋고 네트워킹도 잘 구성되어있는데 그런 자산을 포기하는 것은 회사로서도 손실 아닌가?

 

이유는 곧 알게 되었다. 신발 사업부가 급전직하하다 보니 임원이나 부장급 등 리더급들부터 움직이고 있었다. 각자도생. 일본이라고는 비행기 갈아타러 나리타공항에 한번 가본 것이 전부라던 부장이 지사 발령이 났다. 허탈했지만 당장 파나마로 갈지 말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도쿄 출장을 갔다가 미키 사장을 만났다. 그때는 GT-4301이라는 상품이 엄청나게 히트를 칠 때였고 후속 모델들도 계속 개발되어 나오고 있었다. 친형제처럼 관계가 좋을 수밖에 없던 시기였다. 회사의 사정을 알리고 조만간 해외지사 발령을 받을 것 같다고 미리 얘기를 하였다.

 

ABC-MART의 일은 후임이 잘 관리할 수 있도록 차질 없이 인수인계 잘 하겠다는 뜻이었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미키 사장이 벌떡 일어서더니 내일 당장 SK 신발부로 갈 테니 같이 가자는 것이었다. 다음날 부산으로 바로 날아온 미키 사장은 신발 사업부장을 면담하자마자 “SK와 더 이상 거래하지 않겠다. 우리는 안영환과 거래한 것이지 SK와 거래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폭탄선언을 해버렸다. 워낙 직선적인 성격이라 걱정은 했지만 내 예상보다 훨씬 더 강경했고 면담 후에 나에게는 회사를 그만두고 같이 일을 하자고 제안했다.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 된다고 했던가? 동시에 찾아온 두 가지 문제로 깊은 고민을 해야만 했다.

 

결국 중대한 모험을 하기로 결심했다. 지금 파나마 지사나 비엔나 지사 등 해외지사로 나간다면 집안의 경제적 문제를 회피하는 것 밖에 아니었다.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으니 죽으라고 돈을 벌어야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신발 사업부는 부산역 근처에 있었다. 부산역에서 중앙동 쪽으로 철로 담벼락을 따라 1KM여를 쭉 걸어갔다. 코오롱 부산지사 사무실, 안면이 있던 B소장과 K과장. 담판을 벌였다. 아버지가 이리저리 융통을 하고 거래처의 미수금을 받아 어렵게 일부를 변제하고 최종적으로 1억원 정도의 금액이 남아있는 상태.

 

경매를 한다 해도 살고 있던 아파트는 선순위가 시가를 넘어있으니 남는 금액이 없고, 시골 전답도 경매를 통해서는 제대로 회수하기 어렵다. 내가 회사를 사직하고 사업을 하려 한다. 남는 채권에 대해 내가 지불보증각서를 쓸 테니 경매를 취하하고 시간을 달라내 미래를 담보로 각서를 썼다.

 

그리하여 그해 11월 사업자등록을 하였는데 당시 K사업부장이 사표를 반려하고 932월에 퇴직하는 것으로 해주었다. 931월에 과장으로 진급 시킨 후 사표를 처리해 주었다.

 

그렇게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1962년 부산에서 출생한 안영환 대표이사는 30년 넘게 신발업계에 몸담은 신발전문 경영인이다. 1988선경(SK네트웍스) 신발사업부에 입사, 평사원을 거쳐 2002년 국내 신발멀티숍의 새 지평을 열었던 에이비씨마트코리아를 창업했다. 20113월까지 에이비씨마트코리아 대표이사를 지내고 2016년부터 현재까지 슈마커그룹(SMK T&I, JD스포츠코리아)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에 있다. (안영환 대표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younghwan.ahn.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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