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환 에세이) 결정적인 그 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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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환 에세이) 결정적인 그 날 1

신발장수 0 2019.08.15

신발해서 우째 살라고 20-1- 치밀한 계획과 배신

 

상장 일정을 어느 정도 정하고 거기에 맞춰 분주하게 일이 진행되었다. 2010년도 회계 마감과 결산을 늦어도 2월 말까지는 끝내기로 하였고 3월 초에는 금융감독원에 상장 신고서를 제출하고 그 이후 한 달여 IR(기업설명회)을 통해 마케팅을 하기로 일정을 확정했다. 5월 초쯤 상장이 되는 것이었다.

 

지정 회계감사인 삼일회계법인이 너무 깐깐하게 한다고 재무팀장이 볼멘 하소연을 했지만 2010년도 영업실적도 예상대로 무난하게 나왔다. IFRS(국제 회계기준) 기준으로도 매출 1856억원에 영업이익 315억원, 17%의 이익률이었다. 기존의 연간 매출, 영업이익이 매년 40% 정도의 성장세가 계속 유지되고 있는 내용이었고 이런 추세라면 매출 1조원, 영업이익 1,500억원에 이르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라는 장밋빛 전망이 가능했다.

 

의아한 일이 발생했다. 상장을 추진했던 2008년 이후에 해마다 정례적으로 대주주인 일본 ABC-MART 측에서 내부회계감사를 진행해왔는데 2월 중순쯤 내부감사를 하겠다고 연락이 온 것이었다. 통상 회계결산 보고가 나온 후인 4~5월 경 해왔던 것인데 제일 바쁜 시기에 감사를 하러 오겠다니 불편한 일이었지만 말릴 도리는 없었다. 그런데 내부감사를 오기로 한날 일본의 관리담당 이사인 K가 법무법인 김앤장의 변호사와 회계사를 대동하고 나타났다. 일본 회계담당자들 서너 명이 와서 내부 회계자료들을 검토하던 때와는 전혀 다른 구성이었다.

 

 

관계사의 내부회계감사에 외부인들을 투입하는 것도 이상했지만 더 이상한 것은 막상 인테리어 회사인 디자인 오소와의 거래에 대해서만 감사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미 KRX의 상장 심사 때 두 달 가까이 조사를 받은 것이어서 자료도 많았고 소명하는데 충분했다. 그런데 현장에 대한 정보와 이해가 충분하지 않아 질문하는 내용이 황당한 것이 많았다. KRX 심사 때도 현장 방문을 통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어서 같이 매장 몇 군데를 가서 확인을 하자고 요청했지만 그런 것은 필요 없다고 거절하였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요즘 말로 답정조(답을 정해놓고 조사)였을까?

 

뜬금없이 황당한 3일간의 내부 감사가 끝나고 2010년도 회계감사도 마무리되었다. 앞으로의 일정은 37일 상장 신고서를 제출하고 바로 이사회를 열어서 회계결산과 상장 절차의 진행에 대해 보고하고 승인을 받는 것이었다. 이사회는 311일 열기로 하였다. 그날 제주도에 첫 매장을 오픈하는 날이라 겸사겸사 제주도에서 이사회를 하기로 하였다. 사외이사들에게 연락을 취하던 총무 팀 K차장이 머리를 긁적이며 방으로 와서 새로 선임된 사외이사 두 분께 연락을 했는데 다 일본 출장 중이라고 해서 연락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우연의 일치라고만 생각했다.

 

37일이 되었다. 월요일이라 평소보다 조금 일찍 출근을 해서 주간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9시경에 일본 관리이사인 K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날 예정된 상장 신고서 제출을 늦춰달라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으니 공모비율을 조정하고 싶으니 서울에 와서 협의를 좀 더 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제주도에서 열기로 한 311일의 이사회를 서울로 변경해달라는 것이었다. 새삼스러운 요구였지만 못 들어 줄 것은 아니었다.

 

39. 점심시간이 지나 일본의 K이사가 왔는데 N사장, 부산의 H사장이 물러난 뒤 사장으로 왔던 K, 그리고 내부감사를 했던 법무법인 김앤장의 변호사와 회계사가 함께였다. 우리 쪽에는 나와 S이사, K차장 등이 앉았는데 통역을 위해 L이 같이 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L은 당시 이태리 출장 기간이었는데 36일 휴일에 갑자기 전화가 와서는 일본 측에서 갑자기 출장을 취소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한다고 하여 의아해했었다. 앉은 자리에서 일본 측은 법무법인 김앤장의 변호사를 통해 디자인 오소의 특수관계자 거래에 대해 내부감사를 진행한 결과를 보고하게 했는데 KRX의 심사 결과와는 전혀 다른 주장을 하였다. 현장을 한 번만 가보면 알 수 있는 인테리어 내외부 자재, 마감재 등의 스펙 상승, 공사 기간의 단축으로 인한 비용 절감 등 그간 수차례에 걸쳐 자료를 제시한 사항들이 전혀 반영되어있지 않았다. 일방적인 주장에 조목조목 대응을 하자 급기야 일본 측은 이것은 법적인 배임이 아니라 비즈니스적인 배임이다라는 황당한 얘기를 하였다. 순간 이것은 무슨 얘기인지 멍해졌다. 법리적으로는 배임이 아니지만 비즈니스적인 배임이다! 경영적인 판단의 문제라는 것인가?

 

그러면서 일본 측은 이것은 도의적인 문제이고 대표이사 사퇴의 이유도 된다는 얘기까지 하였다. 나는 법적인 문제가 없고 오히려 타 거래처에서 야기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여 회사에 도움이 되기 위한 경영적인 선택이었다고 주장했으나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KRX에서 특수 관계 거래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심사해서 회사에 도움이 된다고 결론 난 사항을 이제 와서 트집 잡는 것은 결국 상장의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물었더니, 일본 측은 상장을 목표로 한다. 다만 상장 전에 경영을 투명하게 하기 위한 절차를 밟는 것이라고 하면서 말끝에 안사장의 의지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무슨 의지를 의미하는지 그때까지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공방이 끝났고 다음날 다시 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L은 일본 측과 매장을 둘러본다고 함께 나갔다.

 

310일이 되었다. 오전에 부산의 K사장이 L과 같이 출근했다. 2시간 정도 얘기를 나눴는데 요지는 일본 측이 나에 대해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상장 후에 순순히 퇴진하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그나마 K가 중립적인 입장인 듯 말해서 큰소리가 나진 않았다. 그리고 오후가 되어 어제의 멤버들이 들이닥쳤다. 일본 측이 하고 싶은 말만 하였다. 신뢰 문제로 더 이상 같이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상장 후에 바로 사임하라.

 

그런데 기가 막히는 것은 상장은 약속하지만 상장 전에 세무조사를 신청해서 받고 내부감사를 또 한 번 더하여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그때 상장하자는 것이었다. 물리적으로 상장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623일까지가 상장 시효였다. 지정감사를 받았고 KRX 상장심사도 거쳤고 외부 전문가를 동원해서 내부 감사도 했는데 또 무슨 조사를 더 하겠다는 것인가? 의도가 분명해 보였다. 어떻게 해야 하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다 돌아간 후 남아있던 L이 일본측에서 부른다며 나간다고 하면서 K와 잘 이야기 해보겠다고 했다.

 

 

1962년 부산에서 출생한 안영환 대표이사는 30년 넘게 신발업계에 몸담은 신발전문 경영인이다. 1988선경(SK네트웍스) 신발사업부에 입사, 평사원을 거쳐 2002년 국내 신발멀티숍의 새 지평을 열었던 에이비씨마트코리아를 창업했다. 20113월까지 에이비씨마트코리아 대표이사를 지내고 2016년부터 현재까지 슈마커그룹(SMK T&I, JD스포츠코리아)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에 있다. (안영환 대표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younghwan.ahn.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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