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환 에세이) 결정적인 그 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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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환 에세이) 결정적인 그 날 2

신발장수 0 2019.08.15

신발해서 우째 살라고 20-2- 치밀한 계획과 배신

 

311일 금요일이었다. 사무실에는 직원들이 거의 없었다. 주말 현장 근무로 금요일은 대체휴무였고 또 그날이 제주 매장 오픈이라 거기로 많이 가 있었던 때문이었다. 제주에서 하기로 했던 이사회가 10시에 예정되어 있었다. 이날은 하루아침에 회사에서 쫓겨나게 된 날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것이었다.

 

평소처럼 8시 반쯤 출근해서 노트북을 켜 어제의 실적을 확인했다. 2011310POS 매출 43천만원! 8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직원이 만들어준 일자별 매출현황 표에 어제의 실적을 점 찍고, 그래프를 그렸다. 제주의 매장 오픈 상황도 챙겼다. 그렇게 일상의 업무를 시작하고 있었는데 9시가 조금 지나 총무팀장 K가 와서 “L이 사내 이사인데 출근을 안 해서 전화를 했더니 오늘 이사회를 모르는 듯이 얘기를 한다고 하며 좀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냥 웃고 넘겼다.

 

 

사실 L에 대해 만감이 교차한다. 내가 쫓겨나다시피 한 311일 이전에도 주위 직원들로부터 “L이 좀 이상하다. 조심하시라는 얘기를 몇 차례 들었다. 그 때마다 그럴 리가 없다고 했다. 역지사지! 아무리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도 인간의 탈을 쓰고 배신을 할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너무 믿었기에 모든 것을 맡겼고 의논했고 대신하게 하였다.

 

일본과의 모든 소통은 L이 담당했다. 부산의 K과장과는 다를 것이라고 근거 없이 믿었다. 상장 후에 사퇴하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일본 측이 L이 후임으로 어떨까 했을 때도 찬성하였다. 지금도 헛갈린다. 인간에 대한 신의, 도리, 최소한의 예의들을 생각하면 L도 어쩔 수 없이 일본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도 있다.

 

만약에 34, 이태리 출장 중에도 회사의 온라인 사업을 아웃소싱으로 했던 K사장에게 전화해서 나에게 뒷돈을 건넨 일이 있었을지 캐물었던 것이 일본이 시켜서 할 수 없이 한 것이라면 314, 대표이사로 선임되자마자 간부급들을 대동하여 강남, 선릉 쪽에 있던 소위 풀살롱에서 질펀하게 벌인 술판이 자축연이 아니었다면

3월 말, 몇 달 동안 흥신소를 고액으로 계약해서 내 뒤를 캤던 결정이 일본 측의 강요에 의해 할 수 없이 한 것이라면 5, 경북 칠곡의 매장을 권리금의 문제로 제3자를 끼워 전대차로 진행했던 건이 나를 배임으로 몰던 전대차 계약과 동일한 구조임에도 형사고발을 한 것은 일본 측의 강요로 어쩔 수 없던 것이라면 무자료 권리금을 해결하기 위해 내가 개인 돈을 10억원 이상 지불했고 그것도 모자라 부외자금을 조성해서 그런 무자료 비용들을 충당했음을 당연히 알고 있으면서 일본 측의 강요로 형사고발 할 수밖에 없었다면 모든 소송이 100% 무죄로 결론이 난 이후인 2017년 카드 결제를 하는 VAN사로부터 돈을 챙겼을 것이라는 배임 횡령 건으로 또 고발을 했고, 어처구니 없이 당시의 계약서만 보면 확인될 문제라 거꾸로 무고로 고발될 수 있는 어설픈 시도가 일본의 무리한 요구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면 L에 대해 아직도 내가 가지고 있는 측은지심은 유효한 것일 것이고 일부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험담하는 자격지심일 것이다.

진실은 무엇인지?

 

10시가 거의 되어 일본 측에서 지명했던 사외이사 두 사람, 그리고 우리 측 사외이사인 L교수, 사내 감사 등이 모였다. L만 오면 시작하기로 했다. 10시 정각이 되자 L, 그리고 일본 측에서 회장까지 포함해서 4명이 들이닥쳤다. 변호사와 회계사도 같이 왔다.

 

순간 내 눈을 의심할 일이 벌어졌다. L이 일본 측 이사 쪽에 앉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확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던 기대가 일순간 무너졌다. 3 22 3이 되는 것이었다. 지분과 이사회 구성이 모두 한순간 일본 측으로 넘어갔다. 일본의 N사장과 L이 내 방에서 얘기 좀 하자고 했다.

 

오늘 사임하라고 했다. “해임은 원치 않으니 자발적으로 사임하면 주식은 오늘 바로 사주겠다는 것이었다. “만약 버티면 주총을 소집해서 바로 해임시키고 지분은 돈 많은 일본에서 계속 증자를 해서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겠다. 억울하면 일본 법원에 소송을 걸어라고 하는 것이었다. 일찌감치 이사회는 시작과 동시에 끝나 버렸고 일본 측 이사 중 한 명은 오히려 내게 정직하게 사업하라고 꾸짖 듯 말하고 돌아갔다. 기가 찬 노릇이었다.

 

P법무법인의 A변호사가 주니어 변호사와 함께 한달음에 와 주었다. 상황을 설명하니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현실적으로 한국의 개인이 일본 법인을 상대로 일본 법정에서 다툰다는 것이 너무 어려울 것 같다고 조언을 해주었다. 방법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올가미였다. 모든 게 의도된 각본대로였음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회사는 고속성장하였고 대여금은 환율 덕에 2배의 가치가 되자 그때부터 치밀하게 시나리오를 만들었던 것이다. 애초의 약속은 헌신짝처럼 버려졌고 IPO와 경영권 보장을 미끼로 지분을 67%까지 늘려 상법상 특별결의가 가능하게 해놓았으니 언제든 해임시킬 수가 있었다. 사외이사 두 명을 기어이 자신의 사람으로 지명하겠다고 고집부린 이유도 알게 됐다. IPO가 다가오자 약한 고리인 특수관계자 거래를 구실 삼아 내쫓으려다가 막상 불법성이 없으니 비즈니스적인 배임을 운운하며 궤변을 늘어놓고 이사회에서 결정타를 먹여 두 손을 들게 만드는 것이었다. 사임당일 바로 460억원을 보내겠다고 할 정도니 철저하게 준비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분은 주당 약 8,700원으로 계산해서 정리하겠다고 했다. 황당한 계산이었다. 8,700원은 2009년도를 기준으로 상증법(상속증여세법)으로 계산한 것이었다. 이미 확정되어 있는 2010년도 결산은 아예 무시한 것이었다. 1년의 영업이익 차이는 약 60% 정도였다. 거기다 상증법이라니. 하지만 어쩔 방법이 없었다. 싫으면 일본 법원에서 소송을 하라는 것이었다. 득의만만그 자체였다. 받아줄 수밖에 없었다. 2017년도인지 ABC-MART가 상장을 하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영업이익이 400억원 정도로 기억하는데 회사 가치를 1조원이라고 주장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사임계를 쓰고 주식양수도 계약서를 만들었다. 그랬는데 더 황당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아연실색할 노릇이었다.

 

 

1962년 부산에서 출생한 안영환 대표이사는 30년 넘게 신발업계에 몸담은 신발전문 경영인이다. 1988선경(SK네트웍스) 신발사업부에 입사, 평사원을 거쳐 2002년 국내 신발멀티숍의 새 지평을 열었던 에이비씨마트코리아를 창업했다. 20113월까지 에이비씨마트코리아 대표이사를 지내고 2016년부터 현재까지 슈마커그룹(SMK T&I, JD스포츠코리아)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에 있다. (안영환 대표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younghwan.ahn.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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