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돌다리도 두드리듯 매사에 확인하라
1970년도 대학 시험에 떨어지는 바람에 재수하기로 작정하였다. 지금에야 재수생이 많지만, 그때 그 시절만 해도 재수생이 많지 않았다.
나는 1년간 Y학원에 다녔다. 실패의 쓴맛을 보았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여하튼 일 년 후 연세대학교에서 입학시험을 치르고 합격자 발표날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때는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합격 여부를 알려면 합격자 발표 전날, 방송사에 전화해서 확인하거나 직접 학교에 가서 벽보판에서 확인해야 했다.
발표 날 나는 파주에 사는 친구와 함께 학교에 갔다. 합격자 발표는 큰 종이에 합격자 수험번호를 써서 벽보에 학과별로 부착하여 확인하게 되어 있었다. 장소는 백양로 입구에서 조금 올라가면 큰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그 느티나무 뒤편에 나무 벽보판을 설치해놓았다.
나와 친구는 한달음에 벽보판 행정학과 쪽에서 39번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도부지 39번은 보이지 않았다. 번호가 없으니 떨어진 것이었다. 당연히 번호가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눈을 씻고 보아도 번호가 없으니 눈앞이 캄캄했다.
파주에서 뒷바라지하시느라 애쓰신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불합격 소식을 전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졌다. 한편으론 그동안 고생스럽게 공부한 것이 허망했다.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2차 대학은 어디로 지원해야 할지’ 고심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기다리는 누님에게는 “떨어졌어”라고 시무룩하게 말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누님은 따라 들어오며 “어제 방송국에 확인하니 불합격이라 하더라”라고 말한다. 누님은 이미 불합격인 것을 알았지만, 내가 크게 상심할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다.
아무튼, 이제 어느 대학이라도 가야 했다. 불합격 소식을 파주에 계시는 부모님께 전할 수 없어서 연락도 못 드리고 이틀이 지났다. 2차 대학 입학원서를 사러 모 대학을 다녀오는데, 누님이 살짝 상기돼서 “아버지가 연대 합격자 명단에 네 번호가 있더라고 전화 왔는데?”라고 하는 것이다.
합격자 발표 시기가 지나도 소식이 없으니 궁금해서 부모님이 직접 학교에 가보신 것이다. 누님과 나는 정말 의아했다. 그래서 다시 확인하려고 연세대학교 합격자 발표 장소로 갔다.
다시 행정학과 합격자 발표 번호가 있는 나무 벽보판을 올려다보았지만, 여전히 ‘39’번은 보이지 않았다. 두 번이나 확인하러 왔는데 번호가 여전히 없으니 나는 크게 실망하여 괜히 왔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우연히 서 있는 위치를 바꾸어 다시 위를 올려다보니 놀랍게도 39번이 보였다. 정말 ‘39번’이 있었다!
알고 보니 39번 번호가 큰 느티나무의 굵은 가지에 가려 보이지 않은 것이다. 재차 확인하니 분명 39번이 있었다. 정말 뛸 듯이 기뻤다. 바로 집으로 달려가서 누님에게 합격 소식을 알렸다.
이렇게 아버지의 확인으로 나는 불합격 이틀 만에 부활(?) 합격하여 연세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하였다.
백덕현은 1951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서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코오롱에 입사하여 잭 니클라우스 팀장 코오롱스포츠 사업부 이사 등을 역임하며 생산과 유통 분야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1년 당시 상무 직급으로 FnC코오롱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으며, 2004년 FnC코오롱 중국법인장을 맡아 중국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2009년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대표이사로 복귀하여 코오롱그룹의 패션사업 부문을 이끌었다. 제18대 한국의류학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2016년에 제3대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