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하우스의 컬렉션을 보면 그들의 아카이브가 잘 정리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매 시즌 새로운 느낌으로 디벨롭 되는 그들의 아카이브를 보면 그 브랜드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고 그것을 해석하는 디자이너의 성향도 정확히 볼 수 있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의 석사과정을 다니던 당시에 자기가 좋아하는 디자이너 5명을 선택하여 리서치를 깊게 하는 과정이 있었다. 좋아하는 디자이너의 특징을 이해하고 자기화 시키는 과정이다. 그 당시 50년대의 실루엣에 푹 빠져 있었던 나는 디자이너 중 한 명을 발렌시아가로 선정했었고, 그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책 속에 나타난 코트를 한 벌씩 만들어 보았다. 마침 발렌시아가 오뜨꾸띄르 부분에서 패턴커터로 일했던 파스칼이 테크니션으로 학교에 있어서 그와 발렌시아가에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50년대 실루엣에서 주목했었던 부분은 여자들의 어깨라인이었다. 여자들의 어깨에서 팔로 내려오는 라인이 인체의 형태로 봤을 땐 비정상적임에도 불구하고, 목선에서 팔까지 이어지는 라인이 시원하고 우아하게 연결되는 것이었다. 그 당시 발렌시아가의 수석디자이너 니콜라스 게스키에르(Nicolas Ghesquiere)가 발렌시아가의 실루엣을 구조적이면서 여성스럽게 재해석하였는데 그 인기가 대단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는 50년대 발렌시아가 코트를 한 벌 한 벌 해체해 패턴을 분석하고 다시 제작해보면서 몰랐던 사실들을 깨우치는 일들은 정말 흥미로웠다. 솔기를 누르는 다림질 하나하나, 시접을 마감하는 방법 하나하나, 코트의 원재료인 원단 그대로의 느낌과 결을 살리기 위해 정성을 다해 만들고 그 시대를 재현해보려고 하였다. 패션 하우스의 전설적인 디자이너들은 디자인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패턴과 봉재에도 능한 기술자였다. 기술을 알고 디자인을 적용하면 더욱 실용적이면서 편안하고 디자이너가 원하는 라인을 살릴 수 있다.
패션디자인이라고 하면 그림을 슥삭슥삭 그려서 이쁜 원단 매칭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가끔 보게 되는데 정말 답답하다. 기본적인 옷일수록 옷 자체의 깊이가 있다. 똑같은 디자인 그림이라고 하여도 기술에 따라 완성되는 옷의 가치는 천차만별이다.
매해 겨울시즌의 코트를 만들 때 마다 그 시절 파스칼과 함께 패턴을 고민하고 제작했던 순간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때론 공들여 만든 패턴들이 원단의 결에 의해 원하는 실루엣이 나오지 않아 재단을 몇 번씩 반복하기도 했고, 코트의 끝단을 깔끔하게 다려놓고 옷걸이에 걸어두었는데 아침에 출근한 파스칼이 코트를 죽여 놓았다고 흥분하던 모습도 떠오른다. 재단과 봉재를 하면서 다림질을 할 때마다 옷을 느끼라며 프랑스어 발음 가득 섞인 말로 속삭이던 그의 목소리가 오늘도 나의 귀를 맴돈다.
감선주 디자이너는 경희대에서 의상학을 전공하고 영국 센트럴세인트마틴에서 공부를 더하고 2010년 자신의 브랜드 ‘TheKam’을 런칭했습니다.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의 가면 디자이너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에는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