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제품이라도 명품으로 인정받도록 만들어라
1980년대 초 당시에 한국은 일본으로 많은 양의 운동복을 수출하였다. 수출 경쟁도 심했다. 1982년 봄쯤, 수출 상담을 하면서 같은 제품의 가격을 책정하는데, 세트당 코오롱은 4달러, 삼성과 대우는 4.5달러, 전문 중소기업은 5달러, (주)백양은 5.5달러로 결정하는 것을 보았다. 그 이유를 조 부장에게 물었다.
“같은 제품에 왜 가격 차이가 있죠?”
조 부장은 ‘품질관리 수준의 차이’라고 답했다. 한국에서 선적 후 일본에서 검사하면 불량률이 그만큼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품질이 향상되게 하고자 약 8개월 동안 매일 공장에 가서 모든 원부자재와 봉제 품질을 확인하였다.
처음에는 공장 사장과 마찰도 있었으나 3개월 후엔ㄴ 사장이 알아서 품질 체크를 해주었다. 한 공장에서 소문이 나니 다른 공장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품질 검사를 해주었다.
6개월 후 일본 오카야마 거래선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거래처 담당자가 코오롱의 품질이 좋아졌다고 하며 거래선 사장을 소개해 주었다. 처음 거래는 4달러였지만 품질이 좋아지니 5.5달러까지 가격을 올려받을 수 있었다. 6년에 걸쳐 운동복은 코오롱이 천하 통일을 이루었다.
이것은 시간 약속을 지키는 것에서 시작하여 모든 약속을 엄격히 지키는 습관으 결과였다. 그때배운 약속 시간 지키기가 CEO까지 갈 수 있었던 기초 자산이었다.
내가 코오롱에서 임원이 되던 때, 조 부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켜보고 있었다고 하며 축하해주었다. 지금도 가끔 조 부장한테 배우던 때를 그려보며 이제 유명을 달리한 조 부장을 그려보곤 한다.
백덕현은 1951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서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코오롱에 입사하여 잭 니클라우스 팀장 코오롱스포츠 사업부 이사 등을 역임하며 생산과 유통 분야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1년 당시 상무 직급으로 FnC코오롱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으며, 2004년 FnC코오롱 중국법인장을 맡아 중국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2009년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대표이사로 복귀하여 코오롱그룹의 패션사업 부문을 이끌었다. 제18대 한국의류학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2016년에 제3대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