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HChoice의 Market Story 20 – 나는 마케팅믹스 4E를 거부한다
얼마 전 지인의 회사를 방문했는데 마케팅을 담당하는 부서장을 소개받았다. 마케팅 담당이라는 말에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한참을 이야기하는데 자꾸만 화제가 모아지질 않고 점점 다르게 비껴감이 느껴졌다. 딴에는 보조를 맞추려 무던히 애를 쓰는 스스로의 모습을 깨닫고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예의 그 부서는 영업, 즉 세일즈(판매, sales)를 담당하는 부서였던 것이다. 영업, 판매, 세일즈 등의 표현보다 아무래도 마케팅이라는 용어가 뭔가 있어 보이고 차원이 높아보여서 그렇게 칭한다는 것이다. 하기야 대부분의 회사들이 광고, 홍보 담당 부서를 마케팅부서라고 칭하는 데 아무려면 어떨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마케팅이 집을 나와 객지에서 고생하는 격이라면 적확한 표현이지 싶다. 물론 판매도. 홍보도 마케팅의 부분이다. 그렇게 보면 조직 호칭으로 사용했다고 해서 틀렸다고 단정하는 것도 무리일 수 있겠다. 그러나 판매나 홍보 업무로 마케팅의 업무 영역을 모두 대변한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 무리수이다. 마케팅은 물건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누구에게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팔 것이며, 그 판매의 반복성과 지속성을 영위할지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을 수행함에 있어 보다 효과적이고 전략적으로 방법을 정의한 것이 바로 마케팅믹스(Marketing Mix)다. 그런데 이것도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변하니 점점 진화하는 것 같다. 1960년대 미 하버드대학의 제롬 메카시(Jerome Macarthy)가 4P를 소개한 이래 6P, 7P를 운운하더니 1993년에는 로버트 로터본이 기존의 4P가 생산자 관점이라는 한계에 있으니 구매자 관점으로 재접근해야한다면서 4C를 언급하면서 변화의 조짐을 보인 끝에 마케팅의 성자(聖子) 피터 드러커가 이에 적극 동조하면서 4C는 마케팅을 하는 사람에게 순조롭게 안착하는 이론이 됐다.
이 이론에 따르면 4P에서의 ‘Product’는 고객의 관점에서의 가치, 즉 ‘Customer Value’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으로 필자가 늘 주장하는 팔릴 수 있는 물건, 즉 ‘Goods’이어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Price’ 역시 고객의 입장에서는 ‘Value for money’, 즉 가치에 대해 지불하는 ‘Cost’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로, ‘Place’는 고객의 접근성에 포커스를 맞추는 ‘Convenience’의 관념으로 풀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며, ‘Promotion’은 결국 고객과의 ‘Communication’을 생각하라는 발상의 전환을 요구한 이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스타벅스의 성공 사례를 연구하던 필립 코틀러라는 사람은 같은 4C일지라도 전혀 다르게 ‘Co-Creation’, ‘Currency’, ‘Communal Activation’, ‘Conversation’으로 풀어내기도 했지만 로터본과 피터 드러커의 4C이론이 마케팅믹스 전략에 4P를 잇는 기본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말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학자들이라서 그런지 최근에는 4E라는 뜬금없는 용어를 만들어서 마케팅믹스라는 시장에 한 발을 턱하니 걸쳐대고 있다. 논지는 4P 이론이 현대 정보화사회, 온라인 마켓이 활성화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맞지 않는다고 단언하면서 고객의 감성적 접근 방법으로 전환해야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그 첫 번째 ‘Experience(경험)’은 어떤까? 마케팅믹스에서의 ‘경험’이란 마케터가 온라인에서 상품후기 등의 직간접적 경험을 어떻게 만들어 주고 그 결과를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거리가 과거와 달리 구체적으로 직면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소비자가 온라인에서 구매행동을 하기 전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다른 사람들의 상품에 대한 평가, 즉 후기 등을 읽어보고 구매를 결정한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과거 유명 연예인이 모델로 나와서 선전하는 것은 그다지 신뢰하지 않고 믿을만한 사람의 경험과 추천에 민감하게 반응하다보니 인플러언서, 파워블로거 등의 역할론과 영향력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그러다보니 돈으로 사람을 사서 가짜 후기를 올리고, 인플루언서나 파워블로거 등을 매수하는 경향이 생겨나는 것이다. 문제는 이게 어디까지가 합법이고 어디부터가 불법인지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후기를 올리는 사람을 돈으로 사서 했지만 실제 사용하고 후기를 올린다면 그것도 불법이 될까? 화장품 광고를 예를 들어보자. 원래 예쁜 연예인 모델이 ‘해당 화장품을 사용하니 이렇게 예뻐졌어요’라면서 연기를 하는 것과 일반인을 포함하여 인플루언서가 ‘이 화장품을 사용해보니 이렇게 예뻐졌어요’하면서 글을 남기며 구매를 유도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마케터는 이런 법적인 문제까지도 고민해야하는 것이다.
다시 돌아와서 우리는 지금 새로운 의미를 가진 4E 마케팅믹스를 이야기하고 있다. 4E는 고객의 감성에 기반한 마케팅전략이다. ‘Experience(경험)’에 이은 나머지 3개의 ‘Engagement(참여)’, ‘Evangelist(전도)’, ‘Enthusiasm(열정)’도 고객의 공감(共感)에 주목하여 궁극적으로 경험의 공유를 유도한다는 전략이라는 것으로 해석하면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짧지만 우리는 마케팅믹스 1세대부터 3세대까지 진화하는 내용을 살펴봤다. 그런데 4P에서 4C로, 또 4E로 변화하는 이론 속에 우리는 중요한 흐름을 찾을 수 있다. 때로는 지나가는 유행일수도 있지만 소위 마케팅 전문가, 석학들이 Manufacturer에서 점점 멀어지고 Customer의 심장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너무 디테일에 연연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지만 관점을 달리해야한다는 교훈은 분명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이론들을 받아들일 때는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4E가 대세라 해서 4P나 4C에 대한 관념까지 다 버리지는 말라는 것이다.
예전 신원에서의 경험이다. 마케팅 관련 서적을 참 많이 보고,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한 브랜드의 관리자가 있었다. 그와 대화를 하면 정말 다독도 했고 정독도 했다는 느낌을 갖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또한 공부한 만큼 그가 공부했던 내용을 실무에 꼬박꼬박 적용하려는 노력도 엄청했다. 일을 하다 난관에 부딪히면 또 다른 관련 서적을 찾아보는데 그 정성과 열정은 지금 생각해도 존경스러웠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책의 내용을 너무나 정직하게 현실에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응용도 해서 실무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책에 억지로 꿰맞추고 그렇게 맞아 떨어진다고 스스로가 정리를 한 후에 책에서의 방법론을 고스란히 갖다 사용하는 모습에 지켜보는 필자가 불안감과 조바심이 이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그 브랜드는 신원 입장에서 피지도 못하고 사라진 사업이 되었다.
그런 사례를 목격한 필자 입장에서는 역시 어설프게 4E만을 무턱대고 고민할 바에는 역으로 거부하라고 말하고 싶다. 확증되지도 못한 4E에 목매지 말고 차라리 버려 버리고, 기본부터 종합적으로 통찰하는 마케터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은 것이다.
마켓스토리를 담당하고 있는 BHChoice는 마켓스토리의 최병호 대표다. 최 대표는 오래전에 코오롱상사에 입사해 신발 전문 MD로 일하다 MCM, 카파코리아, 신원, 파크랜드제화 등 여러 패션기업을 경험했다. 이후 국회의원에 도전했다 낙선해 큰 내상을 입은 후 정신 차리고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원장을 거쳐 현재는 장애인과 관련된 강의와 마케팅 컨설턴트로 활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