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백화점 하면 갑질을 먼저 생각한다. 백화점은 일반적으로 협력업체들에게는 영원한 갑이요, 고객에게는 영원한 을이니 아이러니다.
우선 소매업의 정점에 있는 백화점에는 많게는 2천여개 협력사가 영업을 한다. 당연히 계약서를 써야하고, 계약서에는 ‘갑’ 과 ‘을’이 명확히 명기돼 있으니 누가 따로 이야길 하지 않아도 갑과 을의 관계가 애초부터 성립이 되어 있다. 물론 현재는 계약서에 갑과 을의 규정을 다른 방식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갑과 을의 지위가 명확하게 계약서에 명확히 인쇄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나지금이나 유명 메이커나 대형 테넌트를 백화점에 유치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 갑과 을의 위치가 바뀌는 대목이다.
옛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명동에 위치한, 그 유명한 L 백화점에 매장을 오픈하면 암묵적으로 품질이나 신뢰도를 인정받은 것으로 간주되고, 또 그로 인해 제2, 제3의 비즈니스로 연결되었던 것이 보통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렇다 보니 유명 백화점에는 자리를 얻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더군다나 90년대 중후반에는 ‘매장에 돌덩이를 갖다 놔도 팔리’는 시대였기 때문에 매장을 내려고 여기저기 연줄을 넣고 그랬다.
그 때 그 시절에 어떻게 동등한 관계를 기대할 수 있었으랴 백화점 바이어 3년이면 집을 산다는 둥, 고급 외제 차를 뽑는 다는 둥 소문들이 무성했던 시절이다. 그 시절에는 호랑이 담배 피는 것만큼 ‘갑질’이 횡횡했었다.
이게 다 옛날 이야기가 됐고 호랑이가 담배피던 시절의 상황이 돼 버렸다. 그래서 소소한 옛날의 갑질 이야기를 하려 한다. 물론 옛날 이야기가 모두에게 미담이 될 수 없겠지만 그 때는 다들 그랬으니 추억으로 담길 바랄 뿐이다. 의미는 없으니 오해가 없기를 바라며...
옛날에는 백화점에 입점되는 상품을 모두 수검을 했었다. 상품의 퀄리티 및 안전성을 검사하여 고객에게 보다 양질의 상품을 공급하기 위함이었다. 하여 백화점마다 검품부서를 두어 상품을 검사했으며 검사에 통화해야만 판매가 이루어지게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렇게 꼼꼼하게 검수를 하니 여러 가지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데, 특히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이나 일시적인 판매를 위한 단품 업체들의 경우 백화점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담당에게 검품을 통과하기 위하여 업체 담당이 찾아오고, 그래도 안 되면 매니저가 와서 인사하고, 젊고 예뿐 동생이 간식을 사들고 오고(옛날 이야기니 오해하지 마시길), 담당의 자리엔 언제나 자양강장제 최고봉인 박카스가 가득했고 간식거리도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소소한 조공이라도 바치지 않으면 행사가 바뀌는 날에 매장에 상품을 깔고 집에 가려면 12시를 넘기곤 했다. 한두 시간이라도 빨리 가기 위해서는 검품 담당의 확인도장이 필요했으니, 그 정도의 조공은 갑질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애교 정도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