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환 에세이) 물러선 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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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환 에세이) 물러선 그 길

신발장수 0 2019.08.22

신발해서 우째 살라고 21- 방향을 잃은 패자!

 

악몽 같은 하루가 지났다. 일어나서 양치를 하는데 계속 구역질이 나왔다. 닦다 일어서서 진정시켜가면서 오랜 시간 양치를 해야만 했다. 세면 거울에 비치는 부쩍 초췌해진 얼굴, 하루 사이에 10년은 늙어버린 느낌이었다.

 

점심때 쯤 회사에 나가 개인 사물들을 챙겼다. 책상 오른 편에 수북이 쌓여있던 이면지들을 어떡할까 고민하다 쇼핑백에 가득 담아왔다. 그 이면지들이 그 뒤 큰 역할을 했다. 1년 가까이 묵은 이면지는 그 동안의 과정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고 후일 법정 다툼에서 중요한 증거들이 되었다. 컴맹이다 보니 자료와 기록들이 이면지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지난 얘기지만 처음 일본 측에서 지분변경을 하자며 무리한 요구들을 할 때 P법무법인의 A변호사에게 자문을 받았었다. 그런 과정과 내용을 알고 있던 A변호사가 일본 측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요구를 하고 거칠게 나오니 만일을 위해서 자료를 많이 확보해놓고 필요하면 주고받은 대화도 녹음해두는 것이 좋겠다고 했었다. 또 사임하던 날에는 최근의 일들을 기억이 지워지기 전 비망록으로 기록해 놓기를 권하였다. 지금 이렇게 자세히 정리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권리금 계약 파일 등 몇몇 자료들과 개인용품들을 챙겨서 차에 싣고 출발하려는데 일본의 K이사가 소식을 듣고 허겁지겁 달려와서는 노트북은 두고 가라고 했다. 1년 전 부산 ITC 사건 때 마련한 것이었는데 그들의 생각엔 각종 자료들이 다 담겨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인데

 

사실 나는 컴맹이었다. 그저 그룹웨어에 들어가 이메일을 확인하고, 결재를 하는 이상의 기능을 하지 못했다. 당연히 노트북에는 아무런 자료도 저장되어있지 않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3월말쯤부터 건대 앞에 있는 컴퓨터학원에서 엑셀 초급을 수강했을 정도였다.

 

314일이 되었다. 8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일본에서 송금이 되었다고 알려왔다. 오후에 P법무법인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사임서에 다시 사인을 했다. 그리고 확인서를 꺼내주길래 보았더니 내용이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A변호사의 힐난을 들은 일본 측 변호사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 수정해서 오겠다고 했다. 일본 측에서 꼭 원한다고 하며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12일 날 저녁에 간부급 직원들을 비상 소집해서 나에 대해 허위사실로 비방한 것을 따졌더니 머쓱하게 돌아갔다. 일본 측은 15일에도 전 직원들을 상대로 나에 대한 험담을 계속했다. 그 후 비전선포식이라는 명분으로 거래처,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두 차례나 더 원색적으로 거칠게 비난을 했다. 직원과 지인들로부터 수많은 연락이 왔다. 일부는 녹음을 해서 보내주기도 하였다.

 

다시 내용을 들어보니 주로 디자인 오소에 관한 것이었는데 공사비를 20~30% 올려서 받아 회사로부터 막대한 부당이익을 챙겼다는 것이었다. 명백히 배임행위를 했다는 것인데 그랬다면 굳이 이사회까지 올 것도 없는 것이었다. 배임으로 고발하게 되면 더 간단히 회사를 뺏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일본 측 입장에선 푼돈이었겠지만 굳이 400억원이 넘는 돈도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근거도 없이 20~30%를 올려 받았다는 등 전 대표에 대한 비방이 이어지자 한 직원이 질문을 했다. “그러면 그 문제만 해결하면 되지, 굳이 안 사장을 내보낼 필요가 있었는지?” 일본 측이 당황하다가 이것 외에도 더 문제가 있을 것이라 조사를 하고 있다고 얼버무렸다.

 

4월 중순쯤이었다. 지방에 모임이 있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걸걸한 경상도 사투리의 50대로 추정되는 아주머니였다. 삼성생명이라고 소개를 하고는 고객 중에 선정이 되어 백화점 상품권 100만원을 특별 사은품으로 주겠으니 만나자는 것이었다. 지방이라 곤란하니 정히 주겠다면 아파트 경비실에 맡기면 찾아가겠다고 하니 꼭 만나서 전해야 한다고 했다. 지방에라도 찾아오겠다며 막무가내라 오히려 이상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굳이 사은품을 안 받아도 된다고 했더니 끝에는 욕설 비슷하게 내뱉는 것이 아닌가? 삼성생명에 친한 친구가 있어 연락했더니 그런 사은품은 없다는 것이었다. 이상했지만 금세 잊어버렸다.

 

그런데 몇 달 뒤 이상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 내 뒷조사를 위해 흥신소를 이용했다는 것이었고 매일 동영상과 서면보고 등이 올라온다는 내용이었다. 매월 비용이 2,000만원이 넘는다고도 했다. 기분이 나빴다. 그들이 어디까지 가는 건지 너무 기가 찼다. 개인 사생활을 들춰내서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하지만 그때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것이 입버릇처럼 되뇌던 2라운드를 위한 준비인 줄은

 

 

1962년 부산에서 출생한 안영환 대표이사는 30년 넘게 신발업계에 몸담은 신발전문 경영인이다. 1988선경(SK네트웍스) 신발사업부에 입사, 평사원을 거쳐 2002년 국내 신발멀티숍의 새 지평을 열었던 에이비씨마트코리아를 창업했다. 20113월까지 에이비씨마트코리아 대표이사를 지내고 2016년부터 현재까지 슈마커그룹(SMK T&I, JD스포츠코리아)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에 있다. (안영환 대표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younghwan.ahn.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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