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해서 우째 살라고 19화 - 日 ABC마트의 속내
2010년 6월 10일이었다. 당시 일본 ABC-MART 사장이었던 N씨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대여금을 주식으로 전환해서 일본의 지분비율을 기존 51%에서 70%로 바꾸고 싶다는 노골적인 요구를 하는 것이었다. 한 동안 잊고 있었던 것이어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추가로 회사가치를 평가하는데 순자산법으로 하겠다고도 요구했다. 날강도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2009년도 ABC-MART KOREA의 순자산은 약 450억원 정도였고 영업이익이 200억원을 넘는 수준이었다. 해마다 40% 이상의 성장을 하고 있던 회사였다. 당연히 DCF(현금 흐름 할인법) 같은 수익가치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현재와 미래의 수익에는 눈을 감고 한계기업에나 적용할 자산가치로 평가하겠다고 하는데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막무가내였다. 몇 차례 만나서 협의를 하였지만 귀를 막고 본인들의 주장만 하였다. 최초 회사를 만들 때 약속한 4가지 합의를 지켜달라고 했다. 그건 알고 있지만 상황이 변했다고 했다. 무슨 상황이 변했는지는 말하지도 못했다.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상장(IPO)을 하지 않겠다. 그리고 안 사장의 경영권 보장도 어렵다. 지분법대로 처리하겠다고 했다. 한 마디로 협박이었다.
내 마음과 같이 믿고 아무런 보장을 담보할 문서를 만들어 놓지 못한 것을 이때서야 후회하게 되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회사법에 정통한 변호사들에게 자문도 구해봤지만 버틸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환율이 2배로 뛰었으니 일본측에서 빌린 240억의 원금이 450억이 되었다. 해마다 원금과 이자를 꼬박꼬박 갚고 있었지만 그들은 이 기회에 회사를 실질적으로 삼켜버리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었다. 물론 내세우는 명분은 자본을 더 확충해서 매장확보를 더 용이하게 하겠다는 것이었지만 연간 200억 이상의 이익이 발생하고 있는데 옹색한 변명일 뿐이었다.
부산의 H사장이 하루아침에 쫓겨나간 것을 목격했으니 그때 최선의 방법은 지분을 일부 양보하더라도 그 이후를 보장할 수 있는 문서를 만드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해 9월 각서를 만들었다.
각서의 내용은 △지분은 대여금을 출자전환하여 67 대 33으로 한다. △경영은 안영환에게 보장한다. △IPO는 안영환의 주도하여 진행한다. △합의의 실효는 안영환이 업무상 위법 또는 부정한 행위를 하거나, 또는 기소되었을 때로 정한다. △준거법은 일본법으로 해석하고 관할은 일본 도쿄지방법원으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관할법원이 문제였다. 한국에서 한국법인의 문제를 일본법원의 관할로 한다는 것이 애초부터 상식 밖이었지만 일본측은 끝까지 고집하여 물러서지 않았다. 이 내용이 아니면 지금까지의 합의를 파기하고 실력행사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짐짓 많이 양보해주는 듯이 IPO와 경영권 보장을 약속했지만 개운치 않은 독소조항이 마음에 걸렸다.
방법이 없었다. 최대한 신속하게 상장을 진행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2008년도에 주간사로 선정했던 우리투자증권과 상장을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 특별한 장애가 없었다. 사업내용도 좋았고 실적도 탁월했다. 이미 상장을 염두에 두고 사업을 했기에 내부적으로 더 손볼 것도 없었다. 11월부터 두 달간 KRX(한국거래소)의 상장예비심사를 받았다. 상장예비심사는 주로 주주나 투자자의 이익에 장애가 되는 요소를 집중조사 하는 것 이었다. 특수관계자와의 거래가 가장 주요한 대상이었다.
내 동생이 대표인 디자인 오소라는 인테리어 시공업체와의 특수관계자 간 거래에 대해 집중 조사를 하였다. 디자인 오소는 2009년 하반기부터 회사의 인테리어 시공을 전담하고 있었다. 그전에는 세 군데 업체로 경쟁 입찰 방식이었는데 여러 가지 문제가 많아 고민 끝에 전담업체를 만든 것이었다. 물론 일본측에게도 통보가 되었고 내용을 알고 있었다. 단가를 비교해서 낮추었고 납기도 개선되었다. KRX의 집중실사결과도 디자인 오소가 회사에 이익이 되어 특수관계자 간 거래의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상장 심사 중 지배구조개선을 위해 사외이사를 좀 더 충원하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일본측에서 일본인으로 2명을 충원하겠다고 했는데 아무런 전문성이 없는 젊은 카레이서와 철판구이 음식점을 한다는 사람을 추천하는 게 아닌가?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라고 했다. KRX에서 펄쩍 뛰었다. 대주주와 독립된 사외이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일본에서 추천하는 것도 안 되는 것이지만 이런 일본사람을 추천하는데 어이가 없어 했다. 결국 일본측에서 한국사람으로 두 사람을 어렵사리 추천해서 사외이사로 정했다. 원칙은 대주주인 일본측에서 사외이사를 추천하면 안 되는 것이었지만 고집을 꺾지 않았다.
12월 24일 만장일치로 상장 심사를 통과하였다. 예정대로 2010년도 결산이 끝나면 4, 5월쯤 상장이 되는 것이었다. 2011년이 되었고 연초에 일본을 갔다. 때가 1월 20일 이었다. ABC-MART는 시부야 본사에 도착해 자리에 앉자마자 이해할 수 없는 불만을 쏟아냈다. 변호사와 상의를 한 것도 문제를 삼았고 상장 후엔 돈만 챙겨서 도망갈 것이 아니냐며 자신들 앞에서 각서를 쓰라는 것이었다. ‘지금부터 일본측이 시키는 대로만 하겠다’고.
어이가 없었다. 지분법 운운하고 막판에 각서를 작성하는 과정에 변호사의 일부 자문을 받은 것이 무엇이 문제인지를 되물었다. 그리고 동업자에게 이런 각서를 요구한다는 것이 너무 무례한 것이고 피땀 흘려 일군 회사를 왜 도망가겠느냐? 하고 이런 유치한 각서를 쓴다는 건 너무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라고 되받아쳤다.
더 이상 할말이 없었다. 2002년 동업으로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열심히 회사를 키워 그 과실을 나누는 것을 목표로 해왔는데 비참하고 참담했다.
1962년 부산에서 출생한 안영환 대표이사는 30년 넘게 신발업계에 몸담은 신발전문 경영인이다. 1988년 ㈜선경(현 SK네트웍스) 신발사업부에 입사, 평사원을 거쳐 2002년 국내 신발멀티숍의 새 지평을 열었던 에이비씨마트코리아를 창업했다. 2011년 3월까지 에이비씨마트코리아 대표이사를 지내고 2016년부터 현재까지 슈마커그룹(SMK T&I, JD스포츠코리아)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에 있다. (안영환 대표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younghwan.ahn.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