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해서 우째 살라고 15화 - 압구정에 첫 매장을 열고...
J는 IMF사태 직전 ‘Cosby’라는 브랜드로 국내 유통을 담당했었던 인연이 있었다. 영민하고 매사에 적극적인 활력이 넘치는 친구였다. ABC-MART를 전개하기로 했으니 같이하자고 했더니 금세 달려와주었다. 고마운 일이었다. 이어서 S도 입사를 하였고 관리파트를 맡겼다. 경력도 있었고 특히 직전 회사에서 위기관리에 대한 경험도 많았다. 미국에 유학했다 현지에서 수입 업무를 했던 K도 합류했다. 그렇게 하나둘 진용이 짜여갔고 명동 초입의 20평 남짓한 조그만 사무실에서 ABC-MARTKOREA의 그림을 같이 그려갔다.
그때 기존에 국내 유통을 하던 업계의 선배들을 많이 만나며 이러저러한 조언을 듣고자 했다. 기억나는 것은 대부분 직영매장에 대한 우려였다. 대리점과 백화점 유통이 주류를 이루던 그 시기에 직영점만으로 진행하려는 나의 계획에 회의적인 반응이 많았다. 심지어는 젊은 매장 직원들에 대한 불신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었고 수많은 브랜드를 파는 매장이라 곧 재고로 인해 큰 손실을 볼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대부분 수긍이 가기도 했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기존의 유통이 가지는 비효율의 다른 한 면이었다. 일본의 ABC-MART도 그 업계의 언더독이었다. 새로운 방식과 전략이 아니면 그저 평범한 유통회사가 될 뿐인 것이다. 정답은 모르겠지만 정석은 아는 것이니 새로운 유통에 맞는 시도를 하겠다고 생각했다.
‘나이키’, ‘아디다스’ 등 브랜드들과도 협의를 시작했다. 슈마커(당시는 The Athlete’s foot. [T.A.F])가 이미 3년 전부터 슈즈멀티숍으로 시작을 했었기에 브랜드와의 협의는 그리 어렵지는 않았으나 6개월 정도의 선행 오더를 해야 하는 타이밍 조정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각 브랜드별로 즉시 출고할 수 있는 보유 재고를 확인해서 사입을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Vans’, ‘Hawkins’는 일본의 오더 수량에 50~100족씩 추가하여 별도로 받아냈다.
후쿠오카를 갔다. 공항에서 두 시간여를 가면 첼시아울렛이 있었다. ‘나이키’, ‘아디다스’ 매장에서 한국에는 출시되지 않았던 상품들을 골라 핸드캐리 할 수 있는 수량을 최대한으로 사모았다. 그 중에 ‘나이키’의 마하러너(Mach Runner)라는 상품은 가져가는 대로 날개돋친 듯 팔려서 몇 차례나 실어 날라야 했다. 엉뚱하게 상품성이 검증되어 이후 한국에서도 발매를 했으니 요즘 말로 ‘역주행’이 되었다. 정상적으로 발주한 상품이 입고되기까지 5, 6개월은 그렇게 꾸역꾸역 상품을 모아서 판매를 할 수밖에 없었다.
매장을 구하려 동분서주하였다. 전략적으로 명동, 강남역, 압구정로데오를 1순위로 정해 집중적으로 조사를 하였다. 결과적으로 2002년 12월 말 압구정로데오에 첫 매장을 오픈하였고 연이어 강남역에 2호점을 열 수 있었다. 명동은 인사 차 에스콰이어의 이범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임대를 주고 있던 명동매장 얘기를 듣게 되어 우여곡절 끝에 3월말에 임차하는 계약을 하게 되었다.
기대대로 4, 5개월만에 목표로 했던 3군데에 매장은 확보했지만 그 과정에서 엄청난 현실의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다. 당시 압구정로데오는 지금보다는 훨씬 활성화되어 있던 곳이었다. T.A.F(슈마커 전신) 매장도 명동 다음으로 매출이 좋았고 브랜드 매장들이 줄지어 있었다. 지금은 가로수길로 상권이 이동했지만 당시는 새로운 트렌드를 시험할 수 있는 상징성이 있었다. 부동산 중개를 통해 괜찮은 매장을 소개받았다. 오랜된 상가를 헐고 새로 신축한 건물의 1, 2층이었다. 그런데 건물주의 요구가 황당한 것이었다. 기존의 세입자들을 명도하느라 들어간 비용을 무자료 권리금으로 요구했다. 또한 매월 월세와 관리비도 50%만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겠다는 것이었다.
상가를 임차할 때 권리금이 있을 수 있다는 건 막연히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정말 암담한 것이었다. 사정이 통하는 것이 아니었다. 임대할 데는 줄서 있으니 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는 엄포에 등골이 오싹했다. 주위를 조사해보아도 사정을 비슷했다. 결국 다음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되돌려 받을 수 있다는 스스로의 기대를 하고 계약을 하였고 권리금 4억 4천만원은 개인 돈으로 지급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에야 권리금도 양성화되어서 무자료로 거래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지만 당시의 상황은 그랬다.
강남역점도 비슷했다. 11번 출구를 나와 150미터쯤, 알파문고가 있던 자리였다. 임대가 나와있던 알파문고 자리는 1층이 10평, 지하가 30평쯤 되는 곳이었는데 1층의 이어진 여성복 매장과 터서 사용해야 어느 정도 매장이 될 것 같았다. 멀쩡하게 영업하고 있는 매장을 비워달라고 하는 것이니 통사정을 하고 영업손실 보상을 해주는 것으로 합의를 했고 역시 2억원을 지급하고 매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매장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어려웠다. 원래 ‘장사는 목이 절반’이라는 말이 있다. 다들 좋은 장소를 선택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다 보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수도 없이 닥쳤다.
명동에서 매장을 수소문할 때였다. 중앙통 요지에 건물주가 직접 ‘빈폴’ 매장을 운영하다가 임대를 하기로 한 건물이 있었다. ABC-MART라는 생소한 브랜드를 하겠다니 아예 만나지도 않으려 했다. 수차례 자료도 보내고 설명도 해서 겨우 마주앉을 수 있었는데 월세로 4,000만원을 요구했다. 다음날 계약을 하겠다고 통보했더니 6,000만원으로 올리는 것이 아닌가. 결국에는 그런식으로 월세가 8,000만원을 넘겼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6개월 남짓의 기간 동안 매장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겪었던 일들은 소매 경험이 전무했던 나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것들이었고 해결을 위해 결국은 사재를 털어서라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매장을 어떻게든 확보해서 일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 중에 직원들은 순조롭게 모였다. 본사에는 마케팅을 담당하는 K가 입사했고 곧 국제상사에서 MD를 하던 K도 들어왔다. 영업 J, 상품 K, 관리 S, 마케팅 K를 주축으로 담당까지 진용이 짜졌고, 매장의 영업직원들도 조직이 되었다. 당시 슈즈멀티숍에 대한 새로운 기대가 꽤 높았던 시점이었다. 압구정점, 강남역점을 어렵게 오픈한 직후 ABC-MART의 비즈니스 모델을 어떻게 전개할지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전략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1962년 부산에서 출생한 안영환 대표이사는 30년 넘게 신발업계에 몸담은 신발전문 경영인이다. 1988년 ㈜선경(현 SK네트웍스) 신발사업부에 입사, 평사원을 거쳐 2002년 국내 신발멀티숍의 새 지평을 열었던 에이비씨마트코리아를 창업했다. 2011년 3월까지 에이비씨마트코리아 대표이사를 지내고 2016년부터 현재까지 슈마커그룹(SMK T&I, JD스포츠코리아)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에 있다. (안영환 대표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younghwan.ahn.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