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혁 부장으로 근무하며 일본 지역 판매망 키우기 임무를 부여받았다. 우선 직원들의 품질에 대한 의식을 향상해야 했다. 제품을 검사할 때 나와 담당직원이 참석하여 검사하게 되었다. 제품 검사 과정을 지켜보니 만족할 만한 품질 수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검사 후 곧바로 출고를 준비하고 있어서 내가 담당자에게 “재검사 해야겠습니다”라고 하니 공장사람과 담당자가 놀랐다. 특히, 담당자는 “오늘 출고해야 신용장의 선적기일을 맞출 수 있습니다”라며 항변하였다.
“부장이 재검사하라고 하여 선적기일을 10일 연장해달라고 바이어에게 요청하세요”
나는 거래선에 전화하여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기일 연장을 부탁하였다. 자기 제품을 좋게 만들어 주겠다는데 어느 누가 동의하지 않겠는가? 그 결과 선적은 7일 늦었지만, 품질이 좋아졌다는 바이어의 칭찬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피혁부의 제품 품질과 업무 품질이 한 단계 높아져 거래선에서 호평을 듣게 되었다. 또한, 부서의 실적도 크게 향상되었다.
피혁부에서 2년 동안 근무하고 나니 본부장이 바뀌었다. 2년 동안 피혁부를 경영해 보니 이제 가죽은 리스크가 너무 커서 피혁 전문가여야만 수출할 수 있었다. 신임 본부장에게 부서 현황을 브리핑하며 피혁제품의 한계를 설명하고 부서 폐쇄를 건의하였다.
신임 본부장도 피혁 제품을 잘 알고 있었다. 본부장은 나를 어디로 발령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건의했다.
“일단 부를 과로 통합하고, 그때 다시 고민하세요”
그해 12월 일본 출장을 다녀오니 ‘스포츠 사업본부 생산부장’으로 인사 발령이 나 있었다. 이리하여 봉제 수출에서 내수 의류 브랜드 사업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사진은 라우렐 가죽제품)
백덕현은 1951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서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코오롱에 입사하여 잭 니클라우스 팀장 코오롱스포츠 사업부 이사 등을 역임하며 생산과 유통 분야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1년 당시 상무 직급으로 FnC코오롱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으며, 2004년 FnC코오롱 중국법인장을 맡아 중국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2009년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대표이사로 복귀하여 코오롱그룹의 패션사업 부문을 이끌었다. 제18대 한국의류학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2016년에 제3대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