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 발레의 기본 동작은 겉으로 보는 것처럼 화려한 것은 아니었다. 한 동작 한 동작을 만들어 내기 위해 손가락의 각도, 팔의 방향, 발끝의 모양, 스텝의 정확성 등등 하나하나를 다듬어 가기 시작한다. 발레에 대해서 잘 모를 때에는 그저 아름답게 팔을 휘젓고 유연하게 다리를 올리는 것이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이제는 발레리나의 스텝 한 동작만을 보고서 감동이 느껴진다. 발레에 대해 찬찬히 알아가며 배우다보니 좀 더 흥미로운 점들을 발견할 수 있고 ‘발레’를 안다는 것이 나의 삶의 어떤 가치를 더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면 모든 분야의 배움이라는 것은 기초를 다듬기 위한 과정을 거친다. 어릴 적 미술학원에 가서 첫 날은 온 종일 선 그리기만 했다. 굵은 선도 그리고, 가는 선도 그리고, 긴 선, 짧은 선, 그리고 선의 굵기에 변화를 줘가며 큰 스케치북 빼곡히 선만 그리는 시간이 있다. 선이 익숙해지면 뎃생을 시작했다. 속으로 ‘선은 집에서도 그릴 수 있는데...’라고 생각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것에 익숙해지면 선만 보고서 이것이 그림을 오래 그린 사람의 그림인지 초보자의 그림인지 알 수 있다. 미술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서예를 처음 시작할 때도 하루 종일 붓에 먹을 묻혀 온갖 종류의 선을 화선지에 그리기 시작한다. 피아노를 시작할 때도 손가락을 풀어주기 위해 기본적인 손가락 동작이 있는 ‘하농’이라는 책을 먼저 쳤던 경험이 있다.
‘기본’이라는 것은 가볍게 생각되고 지나치기 쉽지만 어떤 것의 가치에 깊이를 더할 때는 풍부한 느낌을 주는 시작점이 된다. 관심이 있는 것에 대한 지식과 흥미가 더해지면 그 기본을 알아볼 수 있고 즐길 수 있다.
옷도 그렇다. 고객을 대할 때 옷에 대해 설명하다 보면 이 고객이 옷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 사람이구나, 아니면 브랜드만 보는 사람이구나, 또는 옷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구나, 알 수 있다. 똑같은 모양의 화이트 셔츠이지만 핏이 어떤 느낌을 주는 지, 똑같은 원단이지만 봉재에 따라 어떤 느낌과 고급스러움에 차이가 있는 지를 느끼는 고객들을 대할 때면 옷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흥이 난다. 옷은 모든 이들의 생필품이다. 생필품에도 가치를 더하고 즐길 수 있는 고객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감선주 디자이너는 경희대에서 의상학을 전공하고 영국 센트럴세인트마틴에서 공부를 더하고 2010년 자신의 브랜드 ‘TheKam’을 런칭했습니다.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의 가면 디자이너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에는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