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과장 직무 대리로 승진을 하였다. 당시 석유파동으로 수출이 어려운 시절이었고, 또한 수출 부서에서는 과 단위 이익을 평가하는 시절이었다. 내가 맡은 과는 적자였고 꼴등이었다. 당시는 봉급 받기가 참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후배를 나보다 더 훌륭하게 육성하면 회사가 더 좋아지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생각에 후배 교육에 집중하였다. 또한, 후배가 일을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도리라 생각하여 과의 어려운 문제를 과감히 정리하도록 하였다.
불량재고, 장기재고, 미수금 정리 등 비정상적 업무 처리를 정상적 업무 처리로 개선하는 등 이러한 것을 후배가 운영하게 되면서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더 좋은 환경을 만들려고 여러 면에서 노력하였다.
나보다 나은 후배를 육성하는 것과 더욱더 좋은 업무 환경을 만들려는 생각은 대표이사로 퇴임할 때까지 나의 경영철학으로 자리잡았다. 이러저러한 직원들의 개선 노력으로 1996년 회사 전체 이익이 100억인데 내가 맡은 부서의 이익이 120억원이었다. 이러한 성과 덕분에 1997년 1월1일부로 임원이 되었다. 3년이나 빠른 발탁 인사였다.
임원이 되어 몇 개 부서를 맡아 경영하게 되었다. 세 개의 부서를 경영하면서 참 많은 것을 느꼈다. 부장 시절에 내 부서에서 일어난 많은 개선사항에 대하여 타 부서에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 타부서는 과거의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직원을 불러 왜 그런지 상담해 보면 안 되는 이유만 설명하는 것이었다.
마치 무엇을 하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 타성에 젖어 있었다. 옆부서에서는 ‘Shop-Master’라는 새로운 제도를 채택하며 매출을 증대시키고 백화점 직원의 업무 효율화를 실현하고 있는데도, 이러한 새로운 모습의 판매 유형을 받아들일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이것은 본부장의 역할이 부진해서라고 판단하였다.
즉, 조직의 장은 개인이든, 각 단위의 조직이든 간에 장점은 적극적으로 교육하여 전체 레벨을 높이고, 각 단위의 단점을 다른 조직에서 또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교육하여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이것 또한 모든 단위의 리더가 해야 할 중요한 업무이다.
영업부장이었을 때 도입한 제도를 본부장이 되어서 다른 부서에 확산하여 시행하는 데 1년이 걸렸다.
조직의 장은 내가 잘 하려고 하는 것보다 조직원들이 스스로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이다. 또한, 미래사업 구상은 본부 내의 사업 학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중요한 임무이다. 브랜드별 삶의 주기를 측정하고 예측하여 기존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미래시장을 준비하는 것은 회사와 후임을 위하는 길이다.
백덕현은 1951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서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코오롱에 입사하여 잭 니클라우스 팀장 코오롱스포츠 사업부 이사 등을 역임하며 생산과 유통 분야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1년 당시 상무 직급으로 FnC코오롱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으며, 2004년 FnC코오롱 중국법인장을 맡아 중국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2009년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대표이사로 복귀하여 코오롱그룹의 패션사업 부문을 이끌었다. 제18대 한국의류학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2016년에 제3대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