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문이다
1970년대는 말 그대로 혼돈의 시절이었다. 각 대학은 데모로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환경이었다. 1972년 10월 무렵에는 3선 개헌에 대한 반대 데모를 막으려고 각 대학에 군이 진주하게 되었다.
그 해 12월 20일에 입대를 하려고 이천에서 입영 열차를 탔다. 대기소에 있다가 12월 30일에 정식으로 논산 훈련소에 입소하였다. 군복무는 이날부터 시작이었다.
훈련소 생활을 마칠 즈음, 동기들 모두가 부사관 학교로 차출된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 당시 훈련이 너무 고돼서 탈영이나 자살 또는 사고로 여러 명이 죽어 나갔단ㄴ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훈련소 졸업과 동시에 부사관 학교로 차출되었다. 동기 중 3명이 정신이상으로 후송되었다는 뒷얘기가 나돌 정도로 훈련은 혹독했다. 인내심의 한계는 계속되었다. 신체조건이 약해서 위기가 기회라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
가방 들 힘조차 부족한 때가 많았기에 내 체력으로 얼마나 버텨낼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한계를 느낄 즈음 변화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때의 규칙적인 생활습관이 부지런한 생활의 바탕을 만들어낸 것이다.
3개월 후 가족이 면회를 왔다. 어머니께서는 다 까지고 거칠어진 손을 어루만지시며 계속 우셨다. 형님은 대학 다니는 데 장기복무할 거냐며 걱정하셨다. 그런 오해가 종종 있었는데 이해시켜 드리느라 애를 먹었다.
논산 훈련소와 부사관 학교 9개월 과정의 훈련을 받고 나니 몸도 맘도 건강해졌다.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었다. 눈물로 받은 졸업장을 들고 7일간의 휴가를 받아 파주 집에 오니 세상은 달라져 있었다. 한번 인생의 전환점을 돌고 다른 세상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고통은 또 다른 세상으로 가는 문이다. 고통을 회피해서는 절대로 맞을 수 없는 세상. 나는 고통을 감내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그 문을 통과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