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어느 날인가 지주회사 인사담당 임원이 찾아왔다. 오늘날의 FnC코오롱 브랜드가 되기까지 공헌이 큰 사람을 찾는 듯하였다. 직접적이 이야기는 없었으나 공적을 조사하여 포상 및 칭찬하려는 듯한 내용이었다.
코오롱그룹에서 직접 소비자를 대하는 브랜드는 스포츠/패션 부문이었고, 그중에서도 스포츠/캐주얼 브랜드가 중심이 되고 있었다. 1990년대 중반에서 2010년대 중반까지 약 20년을 지켜온 골프 브랜드와 스포츠/캐주얼 브랜드는 대한민국의 톱 브랜드의 명성을 유지해왔다.
2004년부터 시작된 아웃도어 브랜드 열풍은 코오롱스포츠 브랜드가 런칭한 지 약 25년 만에 대한민국 아웃도어 1등 브랜드가 되어 약 10년간 대한민국 아웃도어 선두 자리를 지키게 된다. 물론 회사의 중심 브랜드로 회사 이익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패션의 흐름은 어쩔 수 없었다. 아웃도어 열풍도 2015년부터 서서히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하게 된다. 약 20여 년을 스포츠/캐주얼 브랜드가 회사를 지켜온 것이다. 나는 1994년부터 스포츠 생산부장에서 시작하고 그 후 여러 브랜드를 거쳐 스포츠 본부장, 캐주얼 본부 신설 담당 본부장, FnC코오롱 대표이사를 거쳐 2011년 은퇴하기까지 약 20여 년간 FnC코오롱 브랜드 흥망성쇠의 산증인이었다. 아마 그래서 지주회사 임원이 나를 찾아온 듯하였다.
아버지가 과수원에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은 자신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손을 위해 심는 것이다. 그의 아들은 일부 나무의 과실을 얻어먹을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을 위해 너무 많은 과실을 따지 않고, 또 자신의 후손이 더 좋은 더 많은 과실을 얻을 수 있도록 또 다른 나무를 심고 가꾸고 지속적인 공부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것이 지속 가능한 경영이라 생각한다.
여기서 할아버지, 아버지, 나, 그리고 아들 누가 잘했는가? 나는 모두가 잘했다고 생각한다. 구태여 누가 제일 잘하였는지 평가할 필요가 있겠는가? 기업의 최고 가치는 지속 가능 경영으로 성장을 통한 소비자와 직원, 주주 그리고 사회가 더불어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백덕현은 1951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서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코오롱에 입사하여 잭 니클라우스 팀장 코오롱스포츠 사업부 이사 등을 역임하며 생산과 유통 분야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1년 당시 상무 직급으로 FnC코오롱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으며, 2004년 FnC코오롱 중국법인장을 맡아 중국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2009년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대표이사로 복귀하여 코오롱그룹의 패션사업 부문을 이끌었다. 제18대 한국의류학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2016년에 제3대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