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밟으며 돌아다닐 때 전해지는 기운이 있다. 아스팔트 바닥이 아니라 흙바닥을 밟으며 걸을 때 느껴지는 힘은 좋은 음식을 먹을 때 서서히 채워지는 좋은 에너지 같다. 평소 정해진 루틴 속에서 틀에 박힌 생활을 하다보면 주말은 예상치 못한 낯선 경험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다.
주말에 다녀온 내소사는 세상과는 약간 동 떨어진 느낌이 들어 좋아하는 곳 중의 하나다. 차를 타고 내소사로 들어서면 명당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힘 있는 배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안정되고 보호받는 느낌을 주면서 고요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일주문 안으로 펼쳐지는 쭉쭉 뻗은 전나무 숲을 거닐고 있으면 꼭 오랜 세월을 견뎌낸 누군가가 속세에서 느꼈던 번뇌들을 어루만져주는 기분이 든다.
천왕문을 지나 불이문의 역할을 하고 있는 봉래루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산에서 막 주워온 것 같은 주춧돌 위에 자리잡은 기둥들은 봐도봐도 신기하다. 평평하지 않은 돌의 단면위에 얹혀져 있는 나무기둥 또한 일정한 두께나 모양이 아니라 나무기둥 그 자체이다. 기둥의 모습은 아주 즉흥적이지만 불규칙한 것들이 균형을 이루며 큰 누각을 받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주 정교한 기술이 뒷받침되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반듯하게 잘라 안정을 취하는 것 모습이 아니라 자연의 있는 것을 그대로 살려 안정감을 추구하는 선조들의 미적 감각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내소사에는 이렇게 자연의 미를 그대로 살린 또 다른 곳이 있다. 내소사의 설선당의 공양간 외벽이다. 천왕문을 들어와 보이는 정면 부분에 이 기둥을 배치한 것을 보면 이 기둥은 선택받은 기둥 중 하나였으리라 생각된다. 이 기둥은 자연스러운 나무의 굽은 모양 그 자체다. 나무기둥의 색과 하얀 벽의 색이 대비되어 기둥의 외형을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대담한 굽은 기둥의 모습은 이 건축물의 지은이의 의도를 잘 나타내고 있다.
이 외에도 대웅전이나 꽃살문 등의 여러 가지가 많지만 여기를 방문한 이라면 설선당의 내부에 있는 전통차를 마셔보길 꼭 권하고 싶다. 차의 맛 때문이 아니라 설선당의 특이한 구조 때문이다. 계단식으로 올라가는 특이한 ㅁ자 구조를 볼 수 있고 복도처럼 구성되어 있는 마루에서 자연의 바람을 느끼며 앉아있으면 그간 묵혀있던 무거운 마음들이 살랑살랑 바람을 타고 몸 밖을 빠져나오는 느낌이 든다.
아주 오래전 선조들의 디자인이 지금 이 순간 삶에 지친 나를 치유해 준다.
감선주 디자이너는 경희대에서 의상학을 전공하고 영국 센트럴세인트마틴에서 공부를 더하고 2010년 자신의 브랜드 ‘TheKam’을 런칭했습니다.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의 가면 디자이너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에는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