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는 목표 지향적으로 살았다. 하나의 목표를 정해놓고 그 목표가 달성되면 또 다른 목표를 세우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20대 후반 센트럴 세인트 마틴 석사과정의 졸업 패션쇼를 끝내고 나니 유명 패션하우스에서 입사를 제의하는 이메일이 쌓여있었다. 쇼를 마친 다음 날, 버스 정류장 주변의 가판대에 꽂혀있는 이브닝 스탠다드의 첫 지면에 나의 컬렉션 옷이 크게 나와 있었다. 기사의 제목은 V for “Victory”였다.
이후 입사를 제의했던 패션하우스들을 직접 방문하기도 하고 일을 하고 있는 선배들을 만나 디자이너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렇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인가? 하는 물음에 빠졌다. 십대부터 목표였던 것이 이뤄지고 새로운 삶에 대한 문이 열렸는데 새로운 삶은 나의 상상속의 미래 모습과는 달랐다. 같이 공부한 친구들은 ‘클로에’, ‘입생로랑’, ‘발렌시아가’, ‘아크네’ 등의 패션하우스로 떠났다. 파리나 밀라노로 이동할 줄 알았던 주변 기대와는 달리 나는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내가 경험하고 싶은 행복은 그 곳에 없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긴 방황이 시작되었다.
원하는 회사에 이력서를 내면 거의 입사가 가능했다. 주변에서 보기에는 평탄한 삶이였지만 내적인 갈등이 심한 시기였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한계를 느끼고 한국의 회사생활에도 종지부를 찍었다. 방황하는 동안 겪은 경험 하나하나 헛된 것이 없다.
방황하고 있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그 시절 내가 생각난다. 삶의 정답을 가진 어른이 없었다. 사회가 빠르게 변하니 미래를 잘 보는 혜안을 가진 선배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방황하는 시기를 보내는 젊은 친구들에게는 지금의 경험이 나중에 꼭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다.
현재 나는 여러 일을 동시에 하고 있다. 20대의 삶과는 너무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하나를 목표로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작업만 매진하지 않는다. 흥미롭다 생각되면 배우고, 도전하고 떠난다. 그것이 일과 연결되기도 한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을 간략히 정리해보면 여성복 디자이너, 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의 미와 3D 프린팅에 대한 연구자, 가면 디자이너 등이다. 각각 카테고리의 업무들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확장이 된다. 지인들은 하고 있는 업무에 비해 홍보가 너무 되지 않는다거나 하나만 집중하면 더 성공하지 않을까라는 이야기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추구하는 행복은 묵묵히 하는 작업에 희열을 느끼고 가치 있는 것을 생산하는 일, 그 자체에 있는 것 같다.
감선주 디자이너는 경희대에서 의상학을 전공하고 영국 센트럴세인트마틴에서 공부를 더하고 2010년 자신의 브랜드 ‘TheKam’을 런칭했습니다.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의 가면 디자이너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에는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