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휴.. 재 때문에 못살겠어. 애 학원 끝난 시간에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걱정돼서 그 빗속을 뚫고 장화랑 우산 챙겨서 내려갔더니, 아 글쎄 왜 왔냐고, 엄마한테 짜증내는 거 있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마눌님의 잔소리가 폭발입니다.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따님에게 농담조로 한소리 했습니다.
“따님, 왜 그랬어? 왜 엄마한테 짜증냈어? 내 마누라한테 짜증을 왜 냈어?”
따님은 책상에 앉아 아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 입을 삐죽 거리더니 금세 눈물을 떨굽니다.
헉!! 옆에 있으면 대성통곡할 것 같아 얼른 자리를 피했습니다.
그 뒤로도 따님은 한참을 훌쩍 거렸습니다.
따님의 눈물이 그치기를 기다린 후에 따님과 단 둘이 외식을 하러 집을 나섰습니다.
“따님, 뭐 그만한 일로 울고 그러냐? 눈물의 연기의 달인이야~~.”
“아빠가 다짜고짜 혼내니까 그렇지... 엄마 편만 들고, 내 마누라한테 왜 그랬냐고 뭐라고 하니까.. 눈물나지..”
“아빠는 혼낸 건 아니고 엄마가 말하니까.. 농담으로 한마디 한 거지..”
“나 우산 챙겨갔는데, 엄마가 장화 가져간다고 기다리라고 해서,, 엄마 기다리다 영어학원 늦고, 학원 늦어서 수업도 늦게 끝나고,, 집에 늦게 오니까, 숙제는 아직도 다 못 끝냈고... 나도 힘들었어...”
“아.. 우산을 챙겨 갔었어? 아빠는 따님이 우산도 안 챙기고 학원 갔는 줄 알았지...”
“그러니까 엄마 편만 들고, 나 무시하고 그러니까 눈물이 안 나냐?”
“아.. 그래 내가 잘못했네.. 미안해.. 그래도 엄마는 따님 걱정돼서 장화 챙긴 거니까.. 엄마한테 짜증 낸 건 너도 조금 잘못 한 거지..”
“몰라.. 오늘은 매운 게 당기네.. 냉면 사줘요~”
따님과 냉면집에 가서 설렁탕과 비빔냉면을 시켜줬습니다.
매운 것을 잘 먹는 녀석이 아닌데도 오늘따라 매운 냉면을 잘도 먹습니다.
“아빠. 사람은 피곤하면 단 것을 찾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매운 것을 찾는대...”
“ㅎㅎㅎ 따님 오늘 스트레스 많이 받았구나..”
“아직 숙데 다 못 했어. 가서 마저 해야 돼..”
“그렇구나.. 그래도 네가 앞으로 8년만 열심히 공부하면, 남은 50년이 편할 수 있어.. 8년 놀고, 50년 힘들 것 보다 8년 고생하고 50년 행복한 게 낫잖아”
“나도 알아.. 아니까 참고 하고 있잖아..”
“그래.. 기특하네. 우리 딸”
매운 냉면 때문인지, 아빠랑 단둘이 보낸 시간 때문인지 따님의 기분은 한 결 나아졌습니다.
공부하는 아이 모습을 보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학교 수업이 끝나고 나면 매일 동네 친구들과 놀던 기억밖에 없습니다.
숙제는 방학숙제 정도가 기억에 남네요. 밀린 일기 쓰던 잔인했던 기억이.....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행복을 포기해선 안 된다는 말도 있지만, 학창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게 제일 후회되기에 따님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얘기하게 되네요.
아이가 매순간 즐거운 일을 하다보면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 사회가 노력하지 않은 사람의 행복까지 책임져 주지는 않기에 아이에게 “공부해라!” “책 읽어라” 얘기하게 됩니다.
따님.. 스트레스 받을 때, 피곤할 때, 언제든 아빠 찬스 써도 돼.. 냉면과 초콜릿 배부르게 먹도록 해줄 게!!